2001년 9월9일 수14:9-12 행복을 베푸는 사람 2001-09-09 02:28:43 read : 10349
신문에 난 기사 가운데 한 글을 생각합니다.
"그는 참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 소매가 닳아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 해 주라는 권유를 를 뿌리치고
바보같이 사랑하는 외아들을 먼 외국으로 쫓아 버렸습니다.
새까만 후배들이 통일운동에 앞장선다면서
가로막힌 북녘땅을 제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릴 때도
그는 참 바보처럼
"저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엘 가지 못하는데 어찌 나 혼자만 가겠는가"라면서
그리운 고향 땅을 한번도 밟아 보지 못했습니다.
사자후 같은 명 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몰랐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입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가졌던
이 바보같은 목사님의 이름은 한 경직 목사입니다.
여러분 누구의 마음으로 사십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사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양보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줄로 믿습니다.
교인중에는 유치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데 유치한 신앙인은 4가지 특징이 있답니다.
내가 해당이 돼나 안돼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①첫번째 예수 믿으면 결코 고난과 고통이 없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은 저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징계의 매를 드신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유치한 신앙인은
②고난을 불행으로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불행과 고난이라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인내할 줄 아는 신앙인입니다.
세 번째 유치한 신앙인은
③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기도는 다 들어주신다고 믿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 하고 속상해 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내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원 대로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욕심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내 소원을 간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처럼 주님 뜻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쩨 유치한 신앙인은
④언제나 모든 분야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승리만 해야 한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밖에 모릅니다. 무조건 이겨야 되고 평지만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는
오늘 갈렙처럼 평지보다 산지를 달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내 뜻 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신앙이며
평지보다 산지를 달라고 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 여분네의 아들로서 출애굽 2년에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뽑힌 12명중에 유다 지파의 대표로 뽑힌 사람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면서 그 땅이 어떠한지, 거민은 어떠한지,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오는 중에 그가 40일 만에 돌아오면서 가나안 땅의 포도 한 송이를 꺾어 왔는데 그 송이가 얼마나 큰지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왔을 정도로 탐스러운 광일 이었습니다.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 와서 보고하는데 10명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땅의 백성들은 모두 거인과 같고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를 할 때에 온 회중이 통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너무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설득하였으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고 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불신앙의 부정적인 나약한 믿음을 가졌던 20세 이상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하고 이제 12지파가 땅을 제비뽑기로 나누는 아주 심각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누가 공적이 큰가에 따라서 땅을 나누겠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비뽑기를 해서 공평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 전날 모두 한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앴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농사짓기 좋은 땅을 배분 받을 것인가,
이왕이면 강이 있고 살기 좋은 땅을 차지할까 하는 심정으로 나와서 제비뽑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침묵이 흐르고 긴장된 순간입니다.
바로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보시오" 라고 손을 들고 크게 외쳐대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갈렙이었습니다.
"나는 저기 높은 산지를 내게 주시요!"
모든 사람들이 원치 않는 헤브론 산지에 땅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헤브론 땅은 헤브론은 산지였습니다.
헤브론에는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고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가나안 땅을 정탐 할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낙 자손들은 네피림의 후손들로 용맹스러운 부족이었으며 그들의 성읍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정탐꾼들이 벌벌 떤 이유도 이 아낙자손들과 그들의 견고한 성읍을 보고 기가 질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헤브론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이 험악한 땅 헤브론을 달라는 것이었다.
갈렙은 여호수아 다음으로 2인자였다.
갈렙이 가나안 땅 중에서 가장 좋은 땅을 달라고 했어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남들이 갖기 가장 싫어하는 땅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헤브론을 받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아낙자손들을 쫓아내고 내 땅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인데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니 내가 힘든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이만한 아량과 포부와 믿음을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공(功)이 있으면, 그의 합당한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힘들어 편히 쉬고 싶을 텐데 갈렙은 그의 나이가 85세 인데도 고생스런 일을 자청한 것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그들을 쫒아내리이다."
이것이 갈렙의 신앙적 삶이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험악한 아낙자손과도 싸워서 이길 수가 있으니 이 산지를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
수14:9에 보면 모세가 갈렙에게 약소한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는 갈렙에게 "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라고 약속한 것입니다.
(민13:32)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수고를 하였기 때문에 그가 밞은 가나안 땅을 마음대로 차지 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갈렙은 이미 옥토를 약속을 받았음으로 고생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갈렙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자기에게 돌아올 옥토를 차지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지의 옥토는 다른 11지파에게 주고 점령하기 어려운 산지를 갖겠다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세상은 자신은 평안한 것을 택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것을 맏기는 것이 요즘 세상인데 갈렙은 이와는 정반대로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갈렙을 통해서 기쁨을 남에게 베풀고 자기는 희생하는 고매한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 조카 롯에게 그렇게 했습니다.(창13:1-18)
이삭도 우물을 빼앗는 그랄 사람들에게 자기를 희생하고 다 양보합니다.(창26:17-22)
나 하기 싫은 일을 남편이나 며느리 시키지 말고 내가 해야 합니다.
나 하기 어려운 일을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고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은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산지를 찾을 때에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신앙이 여러분의 신앙에 모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맨날 평지만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한번 산지를 달라고 해 보십시오.
남들이 하기 싫은 일 화장실 청소,주방 봉사를 자청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불평하고, 무엇 때문에 섭섭해 합니까?
내가 남보다 힘든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너무 쉬운 것만 찾지 마십시오.
나 하기 어려운 일을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고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나 하기 싫은 일을 남편이나 며느리 시키지 말고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은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밝아질 것입니다.
오늘 갈렙은 그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갈렙은 어떤 믿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신앙으로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까?
1.갈렙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과 꿈이 마음속에 언제든지 가득 채워 있었습니다.
7절에 보면 "성실한 마음으로..."
9절에는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라고 갈렙의 신앙을 기록하였습니다.
갈렙은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신앙인 입니다.
갈렙은 평소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만을 쫒는 신앙인 었다는 것입니다.
40세 때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을 때의 마음이나 45년이 지난 지금! 85세 때의 마음이나 여호와를 쫒는 변함없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로 때로 낙심하고 좌절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45년 동안의 갈렙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하여 충성된 마음으로 변치 않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 전쟁의 승리자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남과 북은 모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남북 모두 누구나 다
"하나님 우리편이 되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편이 되게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링컨은 그 자신이 하나님편이 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쫒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전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기도처럼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여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편한 것을 구하기 보다 힘든 일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갈렙은 남에게 기쁨을 베푸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상은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은 시대인데
갈렙은 그 모든 영광과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갈렙이 "나는 1등 공로자니까 내가 제일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겠소"
라고 말한다면 여호수아의 입장이나 백성들의 신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주연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조연이 없으면 주연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려면 수많은 조연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서도 조연이 필요합니다.
갈렙의 위대한 점은 그가 무대 뒷편에서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모세가 있게 된 것은 그 배후에 아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협력이 없었다고 하면 모세는 그 큰 일을 감당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갈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특별한 직책을 맡은 일이 없이 평범한 족장이었습니다.
그래도 갈렙은 불평없이 여호수아를 잘 받들어 주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간 숨은 지도자였습니다.
여호수아가 훌륭한 지도자가 된 것은 바로 갈렙과 같이 묵묵히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극이 상연되려면 주연도 중요하고 조연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람들은 무대 뒤에서 조명도 해주고 분장도 해주고, 효과, 음향 등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있음으로 한편의 연극이 상연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아야 할 영광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때 쉽게 질투하거나 섭섭해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무엇입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히기를 "제 2 바이올린입니다. 제 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제 2 바이올린을 연주하려는 사람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무도 제 2 연주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면 아름다운 음악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우리는 모두 칭찬 받고 박수 받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이 되십시오.
묵묵히 무대 뒷편에서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 가십시오
기쁨을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농장 주인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 농장의 가축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어 잔칫상에 올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소가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이 농사일을 돕는데 기여합니다. 논을 갈고 밭을 갈뿐 아니라 짐을 실어 나릅니다. 그러니 나는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랬더니
개가 가 말하기를 "나도 도둑이 들어오면 짖고 막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고양이도 말했습니다. "나는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아 먹습니다.
닭도 한마디 했습니다. "나는 새벽을 알리고 날마다 알을 낳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죄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돼지가 죽음으로서 그 주인집 딸의 결혼식 피로연은 훌륭하게 치룰수가 있었지만 누구하나 돼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청소원은 지저분한 직업이지만 청소하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세상이 더럽겟습니까?
여러분 세상에는 이와같이 이름도 빛도 없이 수고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정말 우리가 가야할 산지가 어디입니까?
겸손과 양보의 산지입니다
일제와 공산 치하에서 민족 해방을 위하여 싸운 조만식 장로님은 일제하에서 때때로 여러 번 투옥된 일이 있었습니다. 옥중 생활 중에서 좁은 감방 안에 14인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밤에는 14명이 함께 누워 잘 수가 없어서 7명씩 교대로 누워서 자는데 7명이 먼저 자고 나머지 7명이 뒤에 잡니다. 그런데 조장로님은 일년여 동안 단 하루 밤도 누워서 자는 일이 없었답니다. 그가 누워서 잘 시간에 몸이 허약한 사람이 보여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자기는 앉아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3.갈렙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12절 "그곳에는 아낙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쫓아 내리이다."
"여호와께서 함게 하시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그들을 쫒아내고 승리자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충성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승리하는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수를 하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간음죄를 짓고 살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는 못살겠다고 눈물로 간구하며, 회개하고 주님만 찾으니까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땅으로 내려가고, 이스마엘을 낳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래도 주님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했지만 주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찾아가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시고 "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 베드로를 다시 감싸 안으시고 높여주신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자존심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3가지 있다고 합니다.
1) 첫째는 "좀더 참았으면 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참지 못해서 나 자신이나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좀더 베풀며 살 걸..."이라고 아쉬워 한 답니다.
자식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왜 좀더 효도하지 못했나 후회한다고 합니다.
재산을 잃어 버리고 나면 내가 있을 때에 좀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했나 후회한다고 합니다.
베푸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좀더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살걸..."하는 것입니다.
돈버는 것, 살림하는 것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큰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감사와 기쁨으로 오손도손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후회하는 이유는 끝까지 열심히 충성스럽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한 에디 켄터라는 사람은 수첩에 이런 글귀를 새겨놓고 일할 때 마다 자신을 되돌아 보곤 했다고 합니다.
1)"내가 지금 하는일이 내 재산과 내 야심을 이루기 위한 일인가 아니면 더 가치있는 값진 보람있는 일인가,
2)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남을 섬기기 위한 것인가'
내가 아무리 성공해도 내 야심을 이루는 것으로 그치면 인생의 패배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신앙의 목표는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그것이 갈렙의 신앙입니다.
갈렙은 성공한 자이지만 그는 성공보다 믿음에 승리자로 당당히 여러 사람들 앞에 나타 났습니다.
갈렙은 꿈과 비전의 갖고 믿음의 승리자요 용기있는 승리자입니다.
우리 인생이 후회없는 인생이 되려면 끝까지 맡은 일에 믿음으로 열심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 에서 보니까 한 마리의 사자가 사슴을 쫓고 있습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았을까요? 못 잡았습니다.
이유는 사자는 한끼의 식사를 위하여 달렸고 사슴은 생사를 걸고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환경이 안 좋아도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온 열성을 다하고 전심전력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본문 13절에는 남에게 기쁨을 베푸는 갈렙에게 주어진 결과가 무엇인지 결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읽는다).
여호수아는 그가 받은 축복권으로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갈렙을 축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갈렙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눈을 크게 뜹시기 바람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는 성도가 되시기 바람니다.
갈렙처럼 성실하게 사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시기 바람니다.
불굴의 신앙 용기를 가지고 고난을 극복합시다.
인간은 늙고 변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을 더 많이 축복하시기 위하여 믿음의 산지를 주시고 크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갈렙에게 꿈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었기에 갈렙은 산지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갈렙을 더 축복하시기 위하여 갈렙에게 산지를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여러 모양의 산지를 주셨습니다.
감사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람니다.
"하나님이 주신 산지를 통하여 더 큰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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