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믿음 좋은 신혼 부부가 결혼하고 얼마후 토요일날 아침에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러 아침에 나가 보니, 자동차 배터리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주일 새벽 집 앞에 편지와 함께 새 배터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제 밤 위급한 환자가 생겼는데, 내 차 배터리가 고장나서 선생님의 배터리를 빼갔습니다. 사죄의 뜻으로 새 배터리와 함게 극장 표 두 장을 드립니다."
이 신혼부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 배터리도 생겼고 마침 그 영화는 평소에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주일 저녁 그들 내외는 교회에서 신혼부부 환영 예배 순서가 있었지만
일단 공짜로 생긴 극장표가 아까워서 하나님 한번만봐주세요 하고 영화구경을 갔습니다.
즐겁게 시내에 나가 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느긋하게 열두 시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문이 열려 있고 집안에 있는 가재도구가 몽땅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웃집 사람들이 말하기를 차를 대놓고 사람들이 짐을 나르기에 이사를 가는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도둑인지 이런 내용의 쪽지가 벽시계에 붙어 있었습니다.
"신혼부부의 좋은 시간까지는 가져갈 수 없어 이 큰 시계만은 손을 안 댔습니다."
우리는 도둑이 편지를 쓴 뜻을 몰라서 또한 극장표가 아까워서
가재 도구를 몽땅 도둑 맞은 신혼주부처럼 눈앞에 이익을 위해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도둑맞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평생을 어리석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살려면 성령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먹고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비록 채소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깨끗한 생활을 해야성령의 충만을 받게됩니다.
참으로 이시대는 악한 시대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을 보고 듣습니다.
사체업자가 돈을 갚지 않는다고 신체 포기 각서를 받아서 사람을 팔고 또한 땅에 묻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에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엽전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돈이 앞을 가려도
엽전 구멍으로 부모가 보이고 형제가 보이고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돈에는 구멍이 없어서 돈이 앞을 가리면 부모도 사람도 형제도 사람도 안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예전에도 세상이 악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이렇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지혜를 구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면 살았던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바로 솔로문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의 희생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꿈에 나타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 너는 구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하고 대답합니다. 솔로몬의 이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함으로 "내가 네 말대로 지혜롭고 총명을 주노니 전에도 후에도 이런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십니다.
우리들은 지식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 15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서
우리는 두가지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첫번째 성령이 내심령속에 임함으로서 우리는"성령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되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내 손에 쥐어짐으로 우리는 "말씀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성령과 말씀의 지혜만이 이 어둡고 험한 인생에서 밝은 등불이 되어 우리들이 천국을 향해 바로 걸어가도록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어떻게 관리해야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로 지혜있는 자같이 지혜롭게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
성령의 지혜를 잘 관리하는 길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지혜를 관리하는 길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험한 세상을 사는 성도는 적당히가 아니라 정확하게 알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지혜에 따라서 /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에 따라서
신앙의 질서대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의깊게 살펴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덤벙댈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하여 낭떠러지가 많습니다. 샛길도 많고 사탄의 기습공격과 마귀의 유혹으로 실족하기 쉬운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세상에서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돈, 지혜, 건강, 각종 은사,그리고 시간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먼 훗날 주님 앞에 서게될 때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반드시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1.세월의 의미
분문에서 말하는 세월은 일반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세월이란 넓은 의미의 80 평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인생의 황금기를 말하는 것으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어린시절이 있고 노인시절이 있지만 그러나 가장 힘차게 일할 수 있는 30-40대가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카이로스의 세월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일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가치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의 시간에 열심히 해야지 늦게 철이 들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되어서 공부하고 일하려고 해보세요. 얼마나 힘이듭니까?
그래서 본문에 세월이란 말은 "기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아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밤이오면 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낮이 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병들지 않았을 때, 기력이 쇠하지 않을 때의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우리는 허송하지 않아야 합니다.
2.아끼라의 의미
본문에 세월을 아끼라에 "아끼라"는 말은 속량하다는 의미로 주님께서 피 흘리는 댓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끼라는 것은 댓가를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즉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위하여 댓가를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인생에 일할수 있는 시절에 여러분은 수고와 희생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일해야 할 기회 시간에 노는 것에 열심하다가는 밤이 오면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수고의 댓가를 지불하고 주어진 기회의 시간을 잘 활용하여야 합니다.
연극은 배우가 대사를 잊어 버리고 다음 행동을 잊어버릴수도 있습니다.
실수를 하여 발에 걸려 넘어질수도 있고 소품을 미쳐 준비하지 못하여 실패작이 될수도 있습니다. 연극이 진행이 잘 안되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시작하거나, 다음번 부터 신경써서 잘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다시"가 없습니다.
인생의 막이 한 번 올라간 후 실수하고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게을러도, 잘못을 저질러도 그냥 진행됩니다. 인생 연극의 막이 닫히면 다시, 한 번 더가 없습니다.
가버린 청춘 지나 간 시절을 돌이킬 수 없고, 한 번 실수를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지금 건강하십니까? 지금이 일할 때입니다. 지금이 세월을 아낄 때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아름답게 선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월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가 그렇게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다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새해 들어 벌써 다섯 달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가운데 하나는 "벌써"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젊은 시절이 어제 같은데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네!" 하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벌써 살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세월에 대하여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과 같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
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의 인생은 70살이고 길어야 80입니다.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잠깐 잠을 자는 것 같고, 화살과 같이 날아가 버립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살같이 날아가고, 잠깐 잠을 자는 것 같이 빨리 지나가는 세월 앞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본 노동자 표준 생활에 대하여 적어 놓았습니다.
25세에 결혼 방 하나 짜리 아파트 35세에 방 두 개 짜리 아파트
40세에 드디어 자기 집 마련 55세에 자식을 결혼시킴
60세에 퇴직 70세에 별세,
우리 인생의 참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이 영원한 나라를 소망위하여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1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일할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가족을 위해서 일할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기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내 뜻은 접어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해서 오늘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 우리 의 뜻 대로 살아 왔지만 무엇하나 흡족것이 만족함이 없었다면
이제 여러분은 자리를 성령님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자리를 양보하고 성령이여 나를 사로 잡아 주소서
성령이여 나를 지배하여 주소서
그리고 성령의 뜻에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즉 무엇을 하든지 성령 하나님에게 뜻을 물어 봐야 합니다.
주님 내가 오늘 이 길을 가야 합니까?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길입니까?
주님 내가 이 사업을 하여야 합니까?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추리적 사고로 인한 행동이고 / 두 번째 계시적 사고로 인한 행동입니다.
추리적 사고란 무엇을 시작할 때에 이것 저것 논리적으로 따져 보아서 옳고 그른 것을 추리해 보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에어컨을 사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가 에어컨을 산다면 어느 회사 제품을 사는 것이 좋은가 우리는 정확하게 따저보고 추리해서 합당한 제품을 사야 합니다.
그러나 계시적 사고는 하나님 말씀을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손익에 맞는 일인가 따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님 말씀에 따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무조건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의 김범일 교장선생님은 김용기 장로님의 차남이었습니다.
젊은 시잘 김범일은 어버지 밑에서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사짓는 일에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땅을 파는 생활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김범일은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집을 나간 김범일에게 어느날 아버지 김용기 장로의 간곡한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일본 사람도 나를 꺽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신사참배도 안했고
창씨 개명도 않했고 나는 생명을 바처서 신앙을 지켰고 나는 생명을 바처서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일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교회나가서 설교도 하고 남을 가르쳐야 하는데
부끄럽게 내 자식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나는 가르칠 자격도 없구나.
범일아 나는 너를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어서 돌아 와라"
이 편지를 받은 아들 김범일은 한없이 울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집으로 돌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성공의 비결은 열심히 일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두명이 약속된 시간에 누가 많이 나무를 베나 시합을 하였습니다.
한사람은 쉬지않고 계속 나무를 베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사람은 한시간 일하다가 쉬고 또 한시간 일하다가 쉬었습니다.
결과를 보니 쉬었다가 일하는 사람이 이겼습니다.
그 사람은 쉬면서 무뎌진 도기날로 날카롭게 갈았습니다.
결국 무딘 도끼로 나무를 베는 사람보다 더많이 나무를 벨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주일날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일이 도끼날을 가는 것처럼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레저라는 명목으로 주일날 야외로 나가지만 부딪치는 것은 교통 지옥이요 바가지요 상혼에 수많은 인파에 오히려 짜증과 피로만 얻을 뿐입니다.
우리는 교회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심령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은 바로 무뎌진 도끼날을 가는 작업처럼 우리의 삶에 새로운 힘을 얻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을 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뜻을 깨달아 알고 지혜롭게 행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삽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과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
술취한1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무엇을 찾고 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안경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디쯤에서 떨어뜨렸는데요?"라고 다시 묻자 그는 "저기 택시에서 내릴 때 떨어졌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행인이 "그럼 거기에 가서 찾으셔야 할 것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술취한 사람은 "그래도 여기는 가로등이 있어 밝으니까 찾기 쉽잖아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술에 취하면 어리석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 충만한 삶이란 '하나님께 예 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 Yes 만 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에 동행하십니다
성령의 충만은 기분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서 옷을 다르게 입습니다.
군인은 군복을 학생은 학생복을 경찰은 경찰복을 회사원은 회사 유니폼을 운동선수는 운동복을 입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은 어떻게 받습니까 ?
오늘 본문 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성령충만의 결과인 동시에 성령을 충만히 받는 비결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산부인과 병실에 가면 많은 신생아들이 누워 있습니다.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그 울음은 다른 아기에게도 영향을 주어 여기 저기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울고있는 신생아들에게 어머니의 배속에 있을 때 그들이 듣던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녹음하여 들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기들은 하나씩 울음을 멈추기 시작하고 평화스럽게 잠들었습니다.
이 실험은 인간 본성과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참다운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에게 돌아갈 때만 본래 인간이 지니고 있었던 평화를 가질 수 있으며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성령충만함을 받아 하나님 품안에 거할 때 모든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길은 1)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기쁘게 줄르 찬양을 할수 없다면 아직도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위하여 마음문이 열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성령 충만을 위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2) 감사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뉴욕항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의 조각가 바톨디씨의 작품입니다.
그는 감사와 사랑과 평화를 상징할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델을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날 바로 자기 어머니가 감사와 평화와 사랑의 인상을 풍기는 자유의 여신상에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결국 조각가 바톨디는 자기 어머니를 모델로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하였다고 합니다.
가족 끼리 서로 감사할 줄 알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식사시간에도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감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교우간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할 때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형편이 좋을 때에 좋은 형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건강할때든지 병들었을때든지,
성공했을 때든지 실패했을 때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3)서로 존경하고 피차에 서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즐겨쓰는 말 가운데 "I am proud of you"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부자간에 "서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것"은 얼마나 행복한 부모입니까?
필라 한국사장 월 1억의 봉급 "아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인터뷰 하다
박정히 대통령때 많은 학생들이 감옥소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할 때 어느 어버지는 자식에게 이런 글을 섰습니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 사람들이 너를 비난하고 흉볼지라도 나는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아버지는 이세상 이 우주에 그 어떤 귀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서로 존경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남편이 아내를 무시한다면 그 가정은 이미 금이간 가정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귀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가지신 분이셨지만
권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지 않고 종의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주님은 권능의 힘으로 로마군대를 몰아내는데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에 피차에 복종하라는 말씀은 서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서로가 힘을 실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낙심할 때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위대한 성악가를 꿈꾸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려운 중에 그 소년에게 어느 선생에게 첫 레슨을 받았을 때 교사는 그에게 "너는 성악가로서의 자질이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 같다"라고 혹평했습니다. 그 때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할 수 있어. 실망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는 것이다" 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를 받고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기다리며 열심히 노래하여 드디어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적인 성악가 앙리코 카루소였습니다.
아무리 실패를 해도 가족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인정해주는 사랑의 격려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서로 힘을 실어주는 곳입니다. 여보 힘들지요 용기를 가지세요 제가 있잖아요
서로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감싸주는 그런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부모 권위만 내세우거나 또는 너무 벅찬 기대를 하여 자녀들이 마음의 짐을 감당하다 못해서 빗나갈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피차에 서로 인정하고 서로를 붙들어주고, 서로 세워주며 서로에게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존경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
피차 복종하는 심령 속에 하나님은 우리의 사회와 가정에 기쁨을 주시고, 평화를 주시고 성령 충만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세월을 아끼며 서로 피차에 복종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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