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이사야 53:5-6 참된 자유 2001-08-20 00:52:11 read : 10706
오늘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 때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보다도 800년 정도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믿음의 눈으로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미 존재하였던 실제로 살았던 예수님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건들을 믿지 못하는 의심하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멀리서 바라보려고 하지 말고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우리 눈앞에 두고 확신을 갖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고난 당하시는 메시야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이미 죄로부터 참 자유함을 받았노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만 믿음이 약한 우리는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둘다 똑같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첫 번째 남자는 아내를 무시하고 처가집을 무시 합니다.
뿐만아니라 주먹까지 휘두릅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딸은 가난이 싫다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결국 아내와 '별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별거하기전 남편은 부인에게 '자기는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밉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려고 충격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맘대로 하세요. 그래야 제가 처라리 편하게 살겠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편은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역시 또한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속썩이던 남편이라도 있는게 얼마나 좋았던지 통감을 하였습니다.
이런 상처속에서 뒹굴던 이 여인이 어느날,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등.. 모든 저의 상처가 이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적 치유"라는 책을 섰으며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아더'입니다.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치유했는가? 그 치유의 장본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하여서 치유 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남자 역시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저는 사업에 실패하고, 삶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목사님은 그에게 처방을 내렸습니다. 종이에 메모를 해 주면서 그대로 꼭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이사야 53장 5-6절을 적어 주고 아무 소리하지 말고 하루에 세 번식 읽으라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남자는 처방대로 아침 점심 저녁에 세번씩 읽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후로 말씀을 읽으면서 죄의식에서 부터 자유함을 얻었고 더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병을 고쳐줍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우리의 정신적인 생활을 안정시켜 줍니다. 더 나아가 축복을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마음에 자유함이 있으며 평강이 있습니다. 기쁨이 넘쳐납니다.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됩니다.
우리가 읽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은 이미 2700-2800여년 전에, 벌써 우리들은 죄로부터 완전한 치유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완전한 치유의 증거를 통해서 우리들의 상처가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질그룻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긁히고 금가고 깨어집니다.
우리는 상처나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의 마음에 70%는 이미 상처난 사건들로 형성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치유받아야 할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의 영적인 모든 상처를 이미 치유하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도다" 라는 말은 이미 과거 완료형입니다. 다 긑난 이야기 라는 것입니다.
병원에는 가끔 치료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여기 모이신 형제, 자매님들 가운데 아직도 지난날의 상처 때문에 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어떤 허물이라고 괜찮습니다. 어떤 죄악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사탄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적인 상처를 안겨주었다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 나오기만 한다면, 상처가 오히려 영광이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를 그냥 바라보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나의 깊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군요. 저를 고쳐 주세요.'
이렇게 반복해서 속삭이기만 해도 주님의 치유가 완벽하고 넘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너의 상처를 별로 만들어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단어가 비슷합니다. 여러분, 별을 뭐라고 할까요? STAR, 그런데 상처는 SCAR 라고 합니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상처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달아주는 별이 됩니다. 상처 많이 받고 하나님 은혜로 치유를 받은 그 때마다 별이 하나씩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죄의식으로 부터 참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죄의식으로부터 참 자유를 얻지 못하면 육신의 질병을 얻게 됩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체까지 병들게 됩니다.
실패로 인한 강한 자책감과 열등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은 육체에도 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1))) 흑인들에게 특히 적혈구 빈혈증 환자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흑인이라는 열등의식이 빈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동성연애자나 마약 복용자가 AIDS에 잘 걸리게 되는 이유도 동성연애나 마약 복용이 선하지 못하다는 열등감 자멸감 때문에 쉽게 AIDS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3))) 또한 사업에 망하거나 감옥소에 들어가는 사람도 병에 많이 걸립니다. 죄의식 열등의식과 패배감이 병을 일으킨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잘못된 심리적인 현상 때문에 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지나치면 다양한 공포증 증세가 나타나는데,
밀폐 공포증, 광장 공포증, 동물 공포증, 고소 공포증, 세균 공포증 등 갖가지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하며 기쁘게 찬송하는 사람들 , 하나님 앞에 모든 것 맏기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나아가 안정된 삶, 건강한 삶속에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마음에 근심병은 때 없이 함부로 찾아옵니다. 최고로 염치없는 불청객입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불청객을 퇴치시킬 완전한 무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착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세상에 다시 없는 망난이 이었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느날 밤 갑자기 동생이 형이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습니다. "형, 내가 어떤 사람하고 싸우다가 사람을 죽였어요, 지금 경찰이 나를 뒤쫓고 있습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이 소시를 듣고 형은 동생의 피 묻은 옷을 다 벗기고 그것을 자기가 대신 입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깨끗한 옷을 동생에게 갈아 입혔습니다. 이윽고 경찰이 쫓아왔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형이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피 묻은 옷이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형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본인도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사형언도를 받고 얼마 후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편 동생은 자기 때문에 형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양심의 가책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형이 대신해서 죽는 다는 사실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형이 있는 형무소로 갔지만 모든 상황은 이미 다 끝나 버린 뒤였습니다. 다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형이 쓴 한 통의 편지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우야, 나는 이 죽음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다. 나는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은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부디 내 대신에 깨끗하고 보람있게 살아가다오," 이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동생은 그 편지를 읽고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자기를 대신해 의로운 형이 죽었습니다.
이 때부터 동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는 다른 사람들 보다 두 갑절의 몫을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변화된 몫이요, 또 하나는 형의 몫이었습니다. 형의 삶을 대신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항상 남보다 두 갑절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형이 입혀준 깨끗한 옷을 다시는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후일 그는 훌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죄의 누명을 쓰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의 죽음을 헛되이 않도록 하라 ,너희는 다시는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아다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그가 지신 나의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죄의 짐입니다.
이 죄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지옥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는 죽음을 요구합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사람을 죽인 동생의 죄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그 죄 때문에 동생은 사형에 처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두 형제가 쌍둥이 였기에 형이 대신 죽어준 것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만 하는 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맨 마지막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헬라 원어로는 '테텔레스타이'라고 합니다.
당시 세금 영수증이 바로 '테텔레스타이' 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이 바로 너희 죄에 영수증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쌍둥이 형이 죽으면서 내가 죽음으로 내 동생이 죄로 해방되었다는 영수증이 된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신 고로 우리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치유, 그 풍성한 치유, 그 넘치는 치유를 받아야 할 권리가 당연히 우리에게 있음을 이사야 선지자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과 우리는 쌍둥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무죄한 분이십니다.
내 대신 죽으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대신하여 죄 없으신 예수가 대신 찔리시고 상하심으로 말미암아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이미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우리들의 육신적 상처까지도 이미 치유하셨습니다.
행여나 여러분들 자신이나 가족들 중에 육체적인 연약함, 질병등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일까 주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각나게 하실 것이요, 깨닫게 할 것이요, 알게 할 것입니다.
먼저 완전한 치유자 되시는 예수님앞으로 나아가 그 분께 우리의 질병의 치유를 간구하는 중보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그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가 53:4절을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질고===는 원어에 "호리"라는 말은 "근심,재난.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택한자의 근심과 질병과 재난의 염려를 지고 가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구주로 믿고 주님께 맡기면 질병도 치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고=== 대신해서 걸머지셨다. 담당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제 모든 책임은 걸머진 사
람에게 있습니다. 당했다'는 말도 '지고'라는 말고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대신 걸머지셨을 뿐만아니라 우리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걸머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육신적인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치유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질병의 원인은 죄때문인가?' 아니면 '연단과 '시험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인가?'
질병의 원인들에 대한 논쟁들과 이야기는 대단히 많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이 파놓고 우리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무서운 함정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병의 원인을 놓고 왈가불가 논쟁하거나 고민할 것이 아니
라. 일단 우리들의 치유자가 되시는 예수님앞으로 그 질병을 갖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미리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회개가 필요하다면 그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해서 회개를 시키실 것이고, 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연단이 원인이었다
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인식하도록 그때 가서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완전하게, 치유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과 모든 질병을 이기신 승리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이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고백이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는 환자를 대하면
그 환자는 잘 병에 낫지를 않고 수술을 하여도 꼭 후유증이 일어 난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환자의 심정인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고침이 있는 것입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불쌍한 여인이 있습니다.
자기의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단순한 마음만을 갖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가를 만졌고, 결국 그 고질병인 혈루증은 깨끗하게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마9:20-22)
예수님은 이 여자의 병을 고침받은 것은 그녀의 순수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그녀를 질병에서 고침 받은것입니다.
미국에서 노예가 매매되던 때의 일입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한 혼혈 여성이 있었 는데, 20세때 그의 소유자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노예 시장에서 경매에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00달러로 시작되어 점점 올라가서 1000달러가 되고 다시 1100달러까지 올 라갔습니다. 이 불쌍한 상황을 보고 있던 한 신사가 1200달러에 그녀를 샀습니다. 그 신사는 그녀를 자택으로 대리고 와 즉시 <자유증서>를 작성하여 건네주며 '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쳐다보지도 않고 '거짓말이겠지요' 라고 말하면서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유함을 받았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치유가 시작됩니다. 의심의 눈으로 읽으면 안됩니다.
6절 끝 부분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 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값을 우리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엉뚱한 대상에게 그 죄값을 물으셨 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담당시키셨 도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 스도이십니다. 자기 외아들 예수님 에게 우리의 죄 값을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어깨에 있는 그 무거운 짐을 들어서 자기의 외아들 예수님의 어 깨에 얹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의 사랑 앞에 여러분의 마음이 녹아 지는 경험은
성령이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 나도록 인도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내 안에 일어나도록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기독교의 은혜는 참 신비입니다.
"이제 너는 됐어. 나는 이제 너에게 죄를 묻지 않겠 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사랑, 이것을 때와 장소의 구별 없이 늘 마음에 담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퀴즈 장면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좁은 길이 하나 있는데 그 길은 아주 대단히 좁은 길이에요.
옆에는 낭떠러지가 있었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산길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또 한 마리의 염소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까요? 둘다 싸우다 죽었다? 하나만 죽었다?
결과는 점점 다가온 이 두 마리의 염소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산에서 내려오는 염소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 밑에서 올라가는 염소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릎 꿇으면 많은 사람이 나 때문에 치료를 받으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두 염소처럼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가 먼저 무릎을 꿇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위해 몸을 굽히셨습니다.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굽히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굽히신 그 몸을 우리가 넘어서 우리는 하늘 나라 백성이 되는 귀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만약 굽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만이 치료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치료받는 역사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내 가족을 향해서 치료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우리의 몸을 굽히십시다.
우리의 자존심을 굽히십시다. 우리의 모든 고집을 교만을 굽히십시다.
내 형제와 이웃을 향하여 우리의 모든 자존심과 체면을 굽히십시다.
내가 나를 죽이고 굽히면 우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치료를 받을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 분께 나의 상처를 아뢰고 부탁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한 사람도, 예외됨이 없이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치유자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눈을 감으시고 머리를 숙이시기를 바랍니다.
남편 혹은 아내 부부관계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분은 계십니까?
결혼의 문제로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계십니까?
나의 불안한 장래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해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이 계십니까?
부도, 파산, 그리고 물질적인 큰 손해를 보고 절망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인간관계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은 계십니까?
내 자신의 질병 혹은 가족 식구들중 질병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은 계십니까?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심한 절망감속에 있는 분은 없으십니까?
심한 죄책감, 정죄감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분든 이곳에 안계신가요?
불안증,우울증, 조울증 때문에 남몰래 고민하고 있는 분은 없으신가요?
가까운 사람중에서 강박관념, 정신이상 알콜중독에 고민하는 사람이 계십니까?
어떠한 병도 좋습니다. 주님앞에 내 놓읍시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 분의 도움을 받읍시다. 치유받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치유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어떤 실수나 허물도 징계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어떤 죄악도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엄청난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고통과 질병에서도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마땅이 우리가 누려야할 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망과 불평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낙심과 좌절로 고통하며 하루하루 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행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
참된 자유함을 되찮는 신앙 생활로 인하여
우리는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고 하는 일마다 축복이 넘쳐야 합니다.
죄의식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고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지상의 삶입니다.
왜 우리가 당연히 주어진 참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삽니까?
예수님이 대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까지 하면서 받아논 영수증이 잇는데 왜 우리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까?
참자유를 찾아 누리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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