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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9:24-27 생각을 바꾸면 못할 일이 없다
    2001-12-10 12:41:03   read : 13124

    모 증권회사 부장으로 근무하던 40대 한분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잘나가던 분이었습니다.
    연봉이 억대가 넘고 유망해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IMF 파고가 큰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다니지 못하게 됐고,
    나름대로 투자했던 주식도 다 휴지 조각이 됐고, 빚까지 산더미처럼 지게 됐습니다.
    일단 집을 팔고 단칸방 전세로 옮겼고, 빚쟁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숨어야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준비도 없이 당한 일이어서 이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죽을 결심을 하고 한강변으로 나갔습니다.
    준비한 농약을 마시고 강물로 뛰어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니 용기가 나지 않더랍니다.
    그 순간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더랍니다.
    '죽을 결심으로 살면 못할 것이 없다'
    그래 죽을 결심으로 한번 살아보자 생각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나 고민 끝에 밑천이 적게 드는 김밥 장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자기가 다니던 회사 앞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다니던 동료 직원들과 부하직원들에게 김밥과 도시락을 팔기로 한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먹고 나니 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마다 다니며 주문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매상도 제법 많이 오르게 됐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느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못할 것이 없더라! 문제는 생각이다"

    그렇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과거에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뀝니다.

    전도가 그렇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그러면 전도도 할 수 있고 닥친 어떤 고난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이봉주 선수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넘어저서 25등 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고 비웃었습니다.
    이제 그는 끝났다. 그리고 미안하니까 거짖말로 넘어젔다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거짖말이 아니냐 라고 의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봉주 선수는 그 것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12장 1절에 말씀대로 경주에는 허다한 증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착해 빠진 이봉주 선수가 어찌 넘어지지 않고도 넘어 젔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오기로 이번 오사까 마라톤 대회에 출전을 한 것입니다.
    불과 올림픽이 끝난지 두달 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라톤 대회에 출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2등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말은
    "일본에 후지다 선수는 나를 이겼다고 기뻐했지만 나는 나를 이긴 것을 기뻐한다"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려웠겠습니까? 대로 좌절이 오고 낙심이 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훈련을 거듭한 끝에 결국 보스톤 마라통에서도 승리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나는 나를 이긴 것을 기뻐하노라"

    여러분 인생도 알고 보면 옆사람과 비교하며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기 스스로와의 경주에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생 경주에서 어떤 사람은 실패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공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생각을 바꿔도 너무 바꾼 사람의 자기 고백이 나옵니다.
    어떻게 생각을 바꿔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 탄복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에서는 올림픽과 같은 이스무스 경기가 매 3년마다 개최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종목은 경마, 마차 경주, 권투, 레슬링, 음악, 시 경연 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대 올림픽의 광경을 회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살던 당시에도 운동경기는 대단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경기가 희랍의 그리스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고 그 다음으로 큰 대회가 고린도시에서 열렸던 이스미안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의 주 종목은 뛰기입니다. 경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경기를 빗대어서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승리하라고 본문에서 권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의 큰 경기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이라는 경기장을 달리는 마라톤 선수와 같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의 마라톤 코스를 달리기 위하여 무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획대로 잘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다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리을 삐걱하여 다치기도 하고 아주 어떤 사람은 포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여튼우리는 자기 인생의 마라톤에 승리를 위해서 악전고투하면서 열심히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라톤 달리기는 "이겨야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지면 할말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였지만 ",
    "지금은 이겨야 할말이 있다"고 합니다.
    지고 나서 아무리 변명한들 지곤만 인생이 만회 될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자가 되어야지실패자가 되면 아무런 변명도 핑계도 인정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라톤은 이봉주 선수처럼 한번 실수해도 연습을 통하여 다음번에 다시 도전 할수 있지만
    우리 인생이란 마라톤은 한 번뿐이기 때문에 핑계나 변명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자기를 잘관리해야 하는가?
    첫 번째 몸을 가볍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도 마찬가지로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신앙경주자의 몸을 무겁게 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짐입니다. 사람은 져야할 짐이 있고, 벗어 버려야 할 짐이 있습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절제하면 더욱 건강해집니다.
    욕심을 절제하면 큰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도한 욕심 때문에 무엇이든지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정욕을 다스리고, 육체의 소욕에 욕심을 버리고, 절제하여야 합니다.

    승리는 거져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적인 경기자들도 절제가 없이는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절제는 자기 통제입니다.
    절제는 극기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끊임없이 누르는 것입니다.

    절제는 나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절제가 나타납니다.

    참다운 신앙의 인격은 절제에서 나옵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말하고 싶은 것 다하고,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다 사용하면 우선은 쉽고, 편하겠지만 그런 생활에서는 고상한 인격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현세에 애착을 갖고 현세에 취미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절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배부른 선수는 고난을 이기지 못합니다.
    배고픔을 아는 자들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힘이 훨씬 강합니다. 이것이 헝그리 정신입니다.
    참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고 어려움과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고난을 정직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악하여서 물질로, 명예로, 쾌락으로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켜 절제를 상실케 하고 있습니다.
    무절제한 삶은 육적인 일이나 영적인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절제의 삶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고,

    아무리 좋은 자동차가 잘다리다고 하여도 자기의 속도를 절제할수 없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다면 그 자동차는 쓸모가 없고 결국에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절제가 없다면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어 예수님의 좋은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본문 27절에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싸움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엡6:12).

    성도의 싸움에 첫 번째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두 번째 마귀와 죄악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몸으로 죄를 범하도록 충동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자기 몸을 제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쾌락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죄악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시켰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싸움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은 누구와의 싸움이겠습니까?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여기 '내 몸을 쳐'라는 말은 구타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고 견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의 충동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성품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죄는 성도의 믿음의 경주를 무겁게 하고, 얽매이게 하기 때문에 성도는 자신을 쳐 말씀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날마다 죽이며 절제하는 삶을 통해

    죄와 사탄과 싸우며, 더 나아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쳐 복종시킴으로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면류관을 얻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자기 훈련이요, 자기 연단입니다.
    신앙 세계에서 싸우는 것에 처음과 나중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그 어떤 다른 세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는 늘 패배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지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두 번째 운동장에 들어선 선수는 열심히 땀 흘리며 뛰어야 합니다.
    24절읽는다
    사도 바울이 빌3: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하고 훈수를 하고 비난을 하고 고함을 쳐도 오직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때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수된 우리는 오직 땀 흘리면서 달리느라고 힘쓸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환영이나 받고, 축하 받으려는 자세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의 달음질한다는 말은 아주 힘을 다하여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달음질하는 자라고 하지 말고, 달아나는 자라고 해야 좋을 말씀입니다.

    구약의 여러 제도 중에 도피성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피의 보수자가 뒤를 따라옵니다. 자기는 사람을 죽였지만 고의성이 없는 우연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살인한 사람들이 도망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때까지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피성 제도입니다.
    이때 도망하는 자가 생명을 걸고 도망갑니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닦아야하고, 도로 표지판을 잘 만들어 찾기 쉽게 해야 합니다.

    뒤따라오는 피의 보수자들은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도망하기 전에 잡아 죽여야 한다고 죽어라고 좇아옵니다. 도망자는 정말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치는 것입니다.
    "사력을 다하여 달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구원 성을 향하여 세상의 허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때로는 용기있게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달음질한다는 말은 "용기있게 돌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쫓아가노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데 바로 그 말은 "과감하게 돌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향하여 오직 정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과감한 결단력이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죽기 살기로 달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4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인생에 마라톤은 때로 생명을 걸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처럼
    죽을 결심이라면 못할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얻는 경기자입니다. (25절 하반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십니다.

    면류관을 "승리자의 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마라톤에 우승한 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월계관은 몇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썩어질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명예도 잠시뿐이고, 한마디로 썩을 면류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썩는 것만이 아니라, 불타 없어질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짓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신앙생활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면류관, 승리에게 주어지는 상급으로의 관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스러운 면류관,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썩지 아니합니다.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3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6절)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라고 합니다.
    향방 없이 주먹을 휘두른다면 되겠습니까?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때려야 KO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24-25절에서는 달리는 경기를 예로 들면서 말씀하다가,
    26절에 와서 권투를 예로 들어 말씀하는 것입니다.
    달리는 사람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야하며, 권투시합에 임하는 사람이 허공을 향하여 헛손질하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프랭크 킹덤(Frank Kingdom)이라는 사람은 '성공의 프로그램'이라는 글 속에서 성공하는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소원과 목표를 분명히 하라
    마라톤 선수가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할 수 있다고 믿고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지 말라.
    경주를 하는 사람은 앞만 바라 보아야지 결코 뒤를 바라 보아서는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목표를 정했으면 즉시 적은 일부터 시작하라.
    다섯째로, 목표 성취를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라고 하였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되려면 무진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승리를 원하는 경주 자는 먼저 자기가 뛰어가야 할 방향을 바로 설정하고 그 목표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앙경주자가 지향하는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라고 했습니다.

    목적이 있는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육상 경기와 같습니다.
    일단 신호가 울리면 결승점까지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올림픽 경기자가 상을 얻기 위해 전력 질주하듯이 신앙생활도 그와 같이 하도록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달리는 경주자는 뒤돌아 볼 여유가 없습니다. 주춤거려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곧 신앙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한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26절에서는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향방 없는 것'은 '목표가 없는', '불분명한'이란 뜻인데 목표가 없이 불안정하게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경주는 목표가 없는 경주는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모든 고난을 감수하며 달음질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상급을 얻기 위하여 성도들은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위대한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방향 목표를 설정하고 힘차게 매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고 고백하므로써 지칠 줄 모르는 자신의 신앙을 우리에게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마라톤 선수들은 절대로 암에 안 걸린답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한번 뛰었다 하면 2시간, 3시간씩 내리 달리니까 온 몸에 땀을 비오듯이 흘립니다. 체내에 있던 모든 병균들, 모든 불순물이 전부 땀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에 절대로 암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게으른 사람들이 말이 많고, 불평이 많고, 교만하고, 남을 미워합니다.
    바쁜 사람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도 바쁘고, 이것저것 바쁘기 때문에 쓸데없는 잡념이나 관념 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고에 대한 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세계에는 자기 연단, 꾸준한 자기 부인이 있어야 자기 상급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최종에 가서 한 순간 방심하거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고, 자기에게 돌릴 때에,
    하나님은 너는 틀렸다고 하시면서 그 얼굴을 돌리실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드리는 일부만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100% 전부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어느 한 시간도 주님이 역사하지 않은 시간이 없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협력해서 선을 이루신 주님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 당하는 고난도 간증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도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들 중에 데마라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알랙산더라는 사람은 순수한 복음주의 신앙을 내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유다 같은 이는 마지막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파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했습니다.

    중국의 어느 집에는 9가족이 한집에서 화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친구가 화목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광으로 안내했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참을 "忍"으로 쓰여진 종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마음이 상할 때마다 먹물로 "忍"을 써서 참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나 불평과 불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고 참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다 있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인내는 믿음을 보존하고 평화를 만들며 사랑을 유지하고 겸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많이 참는 자가 성숙한 인격자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매사에 참고 나면 모든 일이 잘되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지 못해서 싸움이 나고, 갈등이 생기고, 헤어지고,
    온갖 삶의 비극은 참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되려면 자기 부정과 자기 희생이 따라야합니다.
    자기 단련과 자기 희생없이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교인이 되려면 땀을 흘려야 합니다. 편안하게는 안됩니다.

    우리의 달음박질의 최종 목표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들의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는 그의 삶의 내용과 방법 모두가 그의 것이 됩니다.
    그를 향하여 달려 나가면 그가 우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삶의 경주를 끝냈을 때 잘 달렸는지 못 달렸는지를 심판하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상은 세상이 주는 썩을 면류관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썩지 아니하는 영구한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최고의 영예는 우리가 일생동안 달려 온 길이 옳았고
    그 내용이 좋았고 아름다웠고 훌륭해야 합니다.
    누가 그것을 판단해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마라톤은 무조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비장의 비법을 세워놓고 달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마치 마라톤 경주가 42.195㎞의 먼길에 달리듯이 우리의 인생도 장거리를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때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갈등하고 긴장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좌절도 하고, 넘어지고 절망하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출발 하지만, 또 다시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경주입니다.

    그리나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그 순간 즉, 거듭난 순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내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가 성공적으로 마쳐지기 위해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달리다 보면 내가 달린것같지만 주님이 달려 주신 것입니다.
    내 힘으로 달리려면 결코 승리할수 없는 것입니다.

    마라톤도 30킬로미터 까지는 육체의 힘으로 달리지만 그 이후로는 정신력으로 달린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젊어서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 깥지만
    살면 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잠23:7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내 생각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승리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하여
    학벌도 좋아야 하고 가문도 좋아야 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하며,
    기술도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태도(attitude)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
    성공적인 삶에 대하여 93%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무뢰한 태도, 거만한 태도, 소극적인 태도, 불손한 태도 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의 바른 태도, 적극적인 태도, 겸손한 태도, 열성적인 태도는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에는 참된 것만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며 옳고, 정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선한 사람입니까? 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요,
    누가 악한 사람입니까? 악한 생각을 가진 이가 악한 사람입니다.
    정결한 생각이 그를 지배하면 정결한 사람이요,
    불결한 생각이 그를 지배하면 그는 물어보나마나 더럽우며 지저분한 사람입니다.
    잠언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불행도 다행이 될수 잇는 것입니다.
    네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고난도 연단을 통하여 더큰 승리의 기포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바꾸고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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