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6:1-6
오창우
2001-11-25
우리 교회의 일군을 세우는 선거를 앞두고 또 진행하면서, 교회일군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교회일군의 세움의 목적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교회일군의 목적은 무엇보다 하나님 축복의 전달자가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에는 문제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일군이 좋은 일군입니다. 축복을 전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전달자가 될 수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교회일군의 자리 교회일군의 위치는 무엇이냐 교회의 리더를 목사님을 협력하고 돕는 자리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일군의 모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그랬습니다. 이 충성
이라는 말속에는 모범이 된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은 늘 얘기하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하
는 것입니다. 교회일군은 적어도 많은 교인들에게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아라` 이렇
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초대교회의 일군의 모델들, 모범이 될 만
한 사람들을 추천하고 또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서
나오는 일군들의 그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가 교회의 어떤 일군이 되야 할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제 마음속에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
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이 승리를 하
기 위해서는 일선에서 싸우는 전투병이 잘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 전투병이 일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하는 후원병의 역할도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가정
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잘 되려고 하면 밖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학생
들이 잘해야 하지만 가정에서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주부의 역할도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일선의 목회자가 잘 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를 후원하는
교회일군들의 역할도 크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과 같은 사도에게도 후원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어떤 분입니까? 여러분 사도바울하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저는
한마디로 사도바울하면 강인함과 완벽함, 슈퍼스타가 생각이 납니다. 유럽세계를 다
니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곳에 마귀를 쫓아내
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의 깃발을 꽂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사자
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 아닙니까? 그럼에도 후원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서
도 할 수 있다`이런 말을 할만한 능력자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에서 만
도 37명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이 능률이 나는 것도 있지만은 함께
할 때 능력이 더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후원하는 일꾼들이 있었
기 때문에 사도바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신앙도 마찬가
지 예요. 내 개인적인 신앙, 나 혼자신앙이면 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도 내가 금식하고 내가 부르짖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
리에게 그렇게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19에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 구하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말씀했습니다. 합심해서 기도할 때 응답의 역사가 더 큰 것입니다. 한 사람보다도
두 사람이 난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하
나님과도 함께 해야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
니라. 우리는 부족해요. 하나님 능력 주셔야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도 남을 돕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하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3: 9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
리는 동역자가 되고 또 도움을 받아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 감
사하고 돕는 좋은 후원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독불장군
없듯이 신앙생활에도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또 가장 약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의 기도를 요청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세
상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고 칭찬할 지 몰라요 독립심이 있다고. 혼자서도 잘한
다고 그러나, 성경의 입장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
람이에요. 서로 도와 가며 사는 사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이런 사람이 축복 받
은 사람이에요. 바로 여러분이 꼭 그런 분이 되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교회의 일군의 모델을 크게 세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은 겐그레아 교회일군이라 칭하는 뵈뵈라고 하는 여자 집사입니
다. 여러분 성경 1절, 2절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
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겐그레아 일꾼인 뵈뵈에 대해 이렇게 얘기 합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서 여러 사
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생각하면서 제 마
음 속에 느끼는 바는 겐그레아 일꾼인 뵈뵈는 진짜 부자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는 부자가 참 많이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 부동산 많은 부자, 큰 기업을 하
는 부자, 그리고 높은 권력을 가진 부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부자는 많지 않습
니다. 대부분의 부자는 내 돈내고 내가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상관하지 아니하고 잘 먹고 잘 삽니다. 그러나 진짜 부자는 이런 사람
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
람에게 나누어 줄까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겐그레아 교회 일꾼이 뵈뵈는 경제적
으로 부유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가난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
다. 나그네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교회로 내놓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
안에 그 그늘아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를 가리켜서 보호자라 얘기합
니다. 후원자라고 하는 것이에요.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늘이 되어줬다고 하는 것입
니다. 사도바울도 긴 전도여행에서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몸도 부실하고 병도 있
지 않습니까? 이때만도 해도 눈이 잘 보이지 않아 가지고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에 바로 이 뵈뵈가 보호자의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진
짜 부자이고 좋은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가 로마서라고 하는 이 편
지를 로마교회에 전달한 것 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지금 인
생의 만년입니다. 그는 얼만 안있으면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싶
은 일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를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기근 때문에 교회가 굉장히 어
려웠습니다. 먹고 지내기가 아주 어려웠어요. 그래서 유럽에 있는 그 개척 교회들
다시 말해서 사도바울이 전도해서 만든 작은 교회들이 헌금을 해 가지고 이 헌금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에도 나와있지만 예루살렘
에 가면 죽는다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깁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곳에 가
서 돈만 전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그들을 함께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한가지 또 소원이 뭐냐면 로마에 가고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선교
활동을 하면서 끝까지 그 맘속에는 로마가 머리 속에 늘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자기가 가서 전도하기 전에 이미 로마에 교회가 세워졌었습니
다. 자 이제 그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되겠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갈까? 로마로 갈
까?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거예요. 그러니 꼭 거
기를 갈 필요는 없고 그저 편지 한 장 쓰면 될 것 같고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그 교회에 초대교회 아닙니까? 처음 시작된 교횐데 그 교회 교인들
이 어려움을 당한다니 내가 찾아가서 보고 싶은 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뵈뵈
가 나섰습니다. 제가 편지를 써 주시면 로마에 가겠고 선생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
길 바랍니다. 이렇게 된 겁니다. 여러분 그러나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가는 길이 대
단히 멀고 험한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라고 하는 것이 어떤 내용일까 기독
교 신앙에 대한 내용 아니에요. 하나님 잘 믿어라. 우리 기독교 교리를 잘 정리해
놨습니다. 그런데 당신들도 아는 것처럼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
던 그런 시절입니다. 이 서편을 가져간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왔다 갔다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또 시간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
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오가는 길에 잠도 자고 먹는 일도 해요.
그 사도바울을 위해서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나 자기의 것을 이 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그 수고가
너무나 감사해요. 또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기록에도 나옵니다. 이 편지라고 하는
것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달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만약에 뵈뵈가 변절이라도
해보십시오. 믿음을 배반해보십시오. 그리고 고발해 보십시오. 로마의 교회가 무너
지고 아울러서 이것 때문에 사도바울도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보
통사람에게 이것을 주는 게 아니에요. 그 만큼 신뢰하고 그만큼 기대하는 사람이었
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뵈뵈는 로마서라는 이 편지를 로마교회에 전달한 것으
로 보아서 그는 대단히 진짜 부자 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간 바쳐, 물질 바쳐
생명 바쳐 주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일꾼이라는 말에 3)자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집사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겐그레아 교회에 집사였다는 것입니다. 그
런데 이 집사라고 하는 것은 그 교회의 일꾼의 하나의 직분인 것입니다. 오늘 같으
면 집사 뭐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지만, 사실은 그 당시 집사 역할을 대단히 큰
역할입니다. 더군다나 여자가 집사를 한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였습니다. 그 때에
오천명의 숫자 속에는 남자만 들어갔지 여자의 숫자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요. 여잔 숫자에도 안세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유대인 남자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에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기도할 정도였어요. 여자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는 토론의 제목을 뭘 삼았느냐? 여
자도 사람인가 그 여자를 사람으로 칠거냐 짐승으로 칠거냐를 얘기 한 거예요. 그
런데 교회는 얼마나 좋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여자도 일꾼으로 세우는
것을 보면 교회 안에는 차별이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 사랑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뭐라고 해도 하나님 안에서는 다 사랑이고 차별이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집사의 역할은 뭐냐? 크게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장로의 역할은 했습니다.
여러분 뭐 아시다시피 여자분과 남자분들의 만남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을 때 아닙
니까? 그 때 여자들에게 장로의 역할을 했어요. 여자 성도들의 생활과 신앙을 지도
를 하고 인도를 합니다. 새로 교회 나온 여성들을 가르치고 그로 세례받게 하는 일
을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집사의 사명 가운데 중요한 것은 뭐냐? 구제하는 일입
니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아봤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
한 모습을 보면서 그는 나와 모든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런 것이에요. 얼마
나 잘 대접했으면 그랬겠어요.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겐그레아 교회 일군으
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이렇게 얘기한다 이겁니다. `자매 뵈뵈다` 이렇게 얘기하
는 것이에요. 왜요? 여러분, 자매라고 하는 말은 가족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
다. 그러나 나하고 전혀 피도 통하지 않은 사람을 형제다 이렇게 얘기할 때 얼마나
가까운 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형제사이에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형제는 그저 도
와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자매였단 말이에요. 나이 어린 교인들에게는
어머니가 됐습니다. 나이 많은 교인들에게는 누이동생이 됐어요. 젊은 사람에게는
누나요, 언니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처럼 그런 사랑을
베풀었던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그 부함을 가지고 나를 알
아달라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사치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했던 것은
자기를 나누었던 것이에요. 어떻게 자매처럼....... 사실요, 남을 돕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참 받으면서 비굴함이 없고 참 치사하다 이런
느낌 안들도록 정말 사랑으로 이렇게 했던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이런 사람을 알아 달라는 거예요. 로마 교회의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
면서 하는 말이 "너희는 예수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
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
었음이라" 최고로 대접하라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
에게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부자처럼 `나를 알아달라`가 아니라 내 것을
나눔으로서 세상이 나를 알아주고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는 그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 3절, 4절 보
시겠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아니라 이방인의 교회
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보면서 참 훌륭한 부부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
다. 이 세상에는 많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을 때는 다 잘하다가 어려울 때도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때는 잘하는데 어려울 때는 잘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IMF이후에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난 그 아내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
게 듣습니다. 그러나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참 훌륭한 부부였습니다. 그것
은 이들의 결혼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 브라스길라는 아내고 아굴라는
남편입니다. 남편이 앞서지 않고 부인이 앞서는 거예요. 그것은 부인의 역할 때문입
니다. 이 브리스길라는 귀족 집안의 딸입니다. 그런데 아굴라는 천민 출신입니다.
귀족 집안의 딸이 천민 출신의 아굴라와 결혼을 했어요. 평강공주가 온달하고 결혼
한 것과 같은 거예요. 평강공주가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듯이 브리스길라도 아굴
라를 교회지도자로 만들었어요.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나 때문에 당신이 잘되는 그런 역할 마땅히 해야 될 줄로 믿습
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남편하나 전도 못하냐고 잘해서 간드러지게 해가지
고 남편들도 변화시켜보라고 했어요. 어떤 여자 성도가 믿지 않는 남편을 어떻게
전도할까 생각하다가 `그래, 내 남편 무뚝뚝한 남자지만, 목사님 말씀처럼 내가 간
드러지게 해봐야겠다`했어요.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나는 당신 때문에 너무
나 행복하고 내가 당신 만난 것이 인생의 최대의 축복인 거 같습니다." 갑자기 밑
도끝도 없이 얘기하니까 이 무뚝뚝한 남편이 하는 말이 "와까노? 니 미쳤나?"하고
한마디로 핀잔하고 끝을 내더래요. 이 부인이 `그래도 내가 해야지`하고 그 다음날
"여보, 당신하고 결혼한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감사했어요. 여보, 사랑해요. 내가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결혼하
겠습니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 남편이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런다 말이에요.
얼마나 머쓱해요. 그래서 조금 정도를 낮춰서 한다는 말이 "여보, 괜히 쓸데 없는
소리하지마"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날이 됐습니다. 또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남편이 하는 말이 "여보, 실은 나도 그래. 잘 알았어. 나도 교회 나가줄게" 했다
는 겁니다. 여러분, `여보, 당신 때문에 정말 행복합니다` 이런 말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어떤 모습으로든지 나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
이 잘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사람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는 또한 주의 일에 동역자였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얘기해요.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인 브리스
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나의 동역자라는 거예요. 사도바울과 같은 일을
했다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에 같이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또 `그들은 내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아니라 이
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그랬습니다. 목숨을 내놓았대요. 어떻
게 생각해보면 귀족집안의 딸이 천민하고 결혼하는 것도 목숨을 내놓는 겁니다. 부
귀영화를 다 내어버린거 아니에요. 이 브리스가는 이런 면에서 전공자인거 같아요.
사도바울을 위해서 같이 복음 전하는 것도 목숨 내놓은 거예요. 그런 것이 너무나
감사했던 것 같아요. 오늘 사랑하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
에 너무나 감사해서 이것을 가지고 없는 사람을 살리우는 일을 했어요. 아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에 감사해서 사도바울이 하는 일에 두 부부가 도왔던 것이
에요. 목숨까지 내놓고...... 다시 말하면 사명을 위해 살았어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은 자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지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사는 것이 사람
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
다라는 말이에요. 사명없이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사명 가지고 살아야
되요. 나 때문에 아무개가 잘되고, 목사님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는, 이런 사람이 진
짜 사명자요 훌륭한 하나님의 일군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꼭 그런 일군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보면 여자들 얘기만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면 여자들이 대게 센 거예요. 그
래서 요새 시중에 떠도는 얘기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어요.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
요. 딸 때문에 걱정하지요. 그런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딸을 둘 가진 부모는 비
행기를 탄데요. 그런데 죽을 때도 비행기를 타가지고 비행기 안에서 죽는대요. 딸을
하나 두면, 이게 또 문제에요. 안방에서 설거지 하다 죽고, 죽긴 죽는데...... 아들 둘
을 두면요, 이집 갈까 저집 갈까 며느리 눈치보다가 길거리에서 죽고, 아들 하나 두
면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방에 갇혀서 죽는 답니다. 요건 세상 사람들 이야기에요.
그러나 우리는 한 형제 자매가, 자녀가 되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세상사람들
의 얘기를 따르지 않고 아들이 됐든 딸이 됐든 며느리가 됐든 사위가 됐든 상관하
지 아니하고 우리 부모님들을 기쁘게 잘 섬기는 사명자로서 사는 여러분 되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얘기되는 것은 에배네도입니다. 5절 말씀 같이 봅니다.
"또 저희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에배네도는 보면서 참 좋은 사람이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성격적으로 굉장히 조용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
에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 믿
은 신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거예요. 충성을 하는데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지요.
변하지 않는 거예요. 자리를 지켜 주는 것이지요. 나는요. 우리 교회에도 이런 자리
를 지켜주는 분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분들 귀하게 여겨야 돼요.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몸 아픈 거 마다하지 않고 그래도 `내가 가야지 우리 목사님이 힘이
나실 거야` 교회 일군은 이런 사람도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어느 집에서요, 가족들끼리 외식을 하러 갔어요. 요새는 음식점에 가지만 옛날엔 이
런 음식점이 있어요. 그래서 잘 기른 개 한 마리를 가지고 나가서 먹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가지고 목을 줄로 묶어서 잡아가지고 먹을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개가
죽는 것을 알았던지 발버둥을 치다가 줄이 딱 끊어진 거예요. 도망가 버린 거죠. 허
탈해서 어떻해요. 그래서 옆에 있던 닭을 잡아 먹었습니다. 아마 그 닭도 참 미안합
니다만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먹었어요. 그리고 잘 놀다가 저녁 때 해가
뉘억뉘억 질 때 집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잖아요. 문이 닫혀 있는데
개 한 마리가 와서 꼬리를 살살살살 흔드는 거예요. 무슨 개이겠어요? 목에요 목줄
을 걸고 끊어진 채로 목에 상처를 입었는데요, 와서 꼬리를 흔드는 거예요. 이것을
본 주인과 가족들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예배당에 갔어요. 예배
를 드리고 나서 "내가 간증꺼리가 있습니다" 하면서 죽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개를 보고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
습니다. 나를 죽인다 하는 그 때까지도 충성하는 이 개처럼 오늘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랬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충성하다가 기분 나
쁘면 가고 그런 것이 나였어요. 나는요, 개보다도 못한 장로였습니다." 교인들이 다
은혜를 받는 거예요. 목사님도 그 말을 다 듣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는 교인들
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나도 개보다 못한 목사입니다." 그리고 또 뭐라고 말했냐하
면 "개 같은 교인되고 개 같은 장로되고 개 같은 목사됩시다" 그랬대요. 때로는 개
도 좋은 뜻에 쓰이는 때가 있는 가 봐요. 여러분, 충성은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이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좋은 교회일군들이 누구를 보고 배웠을까요? 사도바울은 얘기했어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이들은 주님을 본받았어요. 여러분, 뵈뵈가
보호자가 되고 진짜 부자였던 게 뭐에요?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까지도 나누어 주셨
어요. 진짜 부자지요. 훌륭한 분이 예수님이었어요. 주님은 내가 죽어서 우리를 살
리셨어요. 주님은 좋은 분이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린 다 주님의 사랑
을 받은 사람이에요. 이 사랑을 받은 만큼 충성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은 교회를 모델이 되어서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네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이렇게 얘기하는 여러분에게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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