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령이 상할 때 2002-07-02 11:05:29 read : 15222
시 143:1-6 // 2002년 6월 30일
□ 내 심령이 상할 때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시편 143:1-6>
모 잡지사가 일상생활의 스트레스(Stress)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려고 독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첫째 질문은 '속이 상할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었습니다.
20대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 술을 취하도록 잔뜩 마신다.
2. 디스코텍에 가서 진땀이 날 때까지 흔든다.
3.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른다.
4. 문을 결어 잠그고 두문불출한다.
5.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난다.
30/40대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 술을 마신다.
2. 무조건 집을 뛰쳐나간다.
3. 드라이브를 한다.
4. 책을 본다.
5. 친구를 만난다.
6. 노래방에 간다.
두 번째,
노래방에 가면 주로 무슨 노래를 부르느냐?에 대한 질문에,
20대와 30/40대는 모두 '소양강 처녀'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가 풀렸느냐?"는 질문에는 단 한 사람도 그런 방법으로 해결되었다고 대
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밤새 술을 마셨더니 속만 쓰리고, 다음날 아침 해장국 먹느라 돈만 들었다."
"차 몰고 집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딱지만 뗐다."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고 나서 이비인후과 신세만 졌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에 "당신이 선택한 그 방법 가운데서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한결같이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느냐"는 질문에,
92.5%가 그런 친구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사람은 많아도 속을 털어놓을 친구는 없나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 해결법을 이렇게 찾았습니다.
(4절)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5절)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6절)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주를 마른땅 같이 사모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부족함이 없는 다윗 왕도 속상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상했는가 하면,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참담(慘憺)'이란 '괴롭고 슬프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의 본 뜻은 '놀라다'(솨멤)는 뜻입니다.
① 심장이 놀랜다,
② 심장이 놀래서 멈추어버릴 지경이다,
③ 속이 상해서 죽을 지경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속이 상할 때 다윗은 어떻게 하였는가? 기도했습니다.
1. (5절)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다윗은 속이 상해 죽게 되었을 때에,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난날 주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묵묵히 생각했습니다.
지난날 주께서 베푼 은총을 기억하고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489장에 보면,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 보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6절에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손을 편다는 것은 이것은 항복을 의미합니다.
'손을 편다'는 것은 자기무능의 선포요, 상대방에 대한 신뢰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스트레스(Stress)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못난 체하고, 없는 체하고, 모르는 체하고 사는 사람에 비해서, 잘난 체하고, 있는 체하고, 아는 체하고 사는 사람이 열 배나 더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
린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자존심이 강할수록 더 많이 받습니다. 스트레스는 교만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받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아와야 하겠습니까?
손들고 나아와야 합니다.
어린애들이 자기 아빠나 엄마에게 달려올 때 손을 펴고 달려오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할 때에 손을 폈습니다.(사1:15, 출17:11)
그것은 절대 항복과 절대 신뢰의 행동입니다.
다윗 왕은 자신을 비우고, 어린애 같이 주님의 품에 뛰어들었습니다.
3. 그리고 6절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마른 땅이 비를 사모하듯이 주를 사모했다는 뜻입니다.
'사모'란 어떤 번역에는 "그리워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 왕도 속상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푸쉬킨의 동상 앞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가슴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푸쉬킨의 삶에서-
우리 주님의 말씀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또 시편 4:7-8절에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1. 세상에 살면서 속상한 일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속에서 낙심되는 일이 있으면 주 앞에 손들고 나아와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축구 열기로 들떠 있던 우리들 마음에 아쉬움을 남긴 주간이었습니다.
또한 이 6월은 6.25를 상기할 때 마다 가슴 앓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라 전체가 전쟁의 재난으로 멍들었던 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과거들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힘을 준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말씀으로 이기게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씀처럼 오늘도 심령이 상할 때 말씀에 앞에 손들고 나아와야 하겠습니다.
옛날 왕이면 속 상하는 일이 없을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 대통령도 속 상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대통령쯤 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속상하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우리들 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2. 다윗 왕도 속상한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어는 정도로 속 상하였습니까?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에도 내 마음이 비참하다는 말을 합니다.
'나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 때에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속이 상해 죽게 되었을 때에, 지난날 주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묵묵히 생각해 냈습니다. 지난날 주께서 베푼 은총을 기억하고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3. 속상할 때 해결의 방법은 하나님께 나아와 손을 드는데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의지함>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손을 드는 것은 <의지함>을 청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달려와 안깁니다.
아직도 손을 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속이 상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주먹을 쥐지 말고, 손을 들고 주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신비로운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위로와 새로운 소망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심령이 상할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늘의 위로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는다고 찬송가에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속이 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손들고 나아와 해결을 얻는 귀한 체험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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