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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2002-08-13 14:48:21   read : 19839

    2002년 08월 11일 // 왕상 19: 1-8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왕상19:1-8)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 하나님도 안식하셨다(창2:2-3).
    하나님은 그 날 속에 안식을 두시고, 날마다 복을 더해 주셨다.

    안식일은 날과 시간 속에 있지, 공간과 장소에 있지 않다.
    안식일이라는 '샤바트( )'라고 하는데, 히브리 동사 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일을 그만 두다, 쉬다, 받아들이다, 경축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마르바 던'은, 안식의 의미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이라 했다.

    (1) 안식은 '그침'이다.
    단순하게 일을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과 성취, 근심과 걱정을 그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안식은 이런 욕심의 그침, 근심의 그침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
    그러한 시도를 그칠 때, 인간임을 선언하는 안식이 이루어진다.

    (2) 안식은 '쉼'이다.
    지치고 상한 몸은 쉬어야 하며, 또한 영혼은 말씀으로 쉼이 있다.
    또한 정서적인 쉼과 지적인 쉼이 필요하다.

    (3) 안식은 '받아들임'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안식이다. 자기의 뜻과 자기의 야망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안식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뜻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정한 안식을 취할 수 있다.

    (4) 안식은 '향연'이다. 안식은 즐거움이며 축제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지음 받았다. 초대교회는 음식을 중심으로, 모여 축제하는 교회였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임도, 이런 축제가 있는 안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이 되면, 전체가 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일체의 행동이 중지된다. 특별히 키부츠에 가면, 더 잘 알 수 있다.
    요란하던 기계소리도 끝이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혼자 있는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안식일에 들려오는 유일한 소리는, 회당에서 유대인 특유의 성경 읽는 소리만 정적을 깬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지, 금식이나 애통 또는 슬픔을 표시하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있으면, 즐거운 날이 아닌가! 안식일 회당 예배는, 최선을 다해서 드린다.
    하나님께 최고의 경외를 표하면서, 정중하고 진실하게 장시간 예배를 드린다.
    한 여름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검정양복 정장에 외투까지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예배드린다.
    우리들처럼, 남방셔츠에, 선풍기나 에어컨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예배를 통하여 안식을 얻는다. 이런 하나님의 안식이 있기를 바란다.

    1.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제일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있다.

    (1)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세상에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일하다가 쓰러져 버리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다.
    일만하면, 그는 기계지 인간이 아니다.

    (2) 하는 일 없이 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백수가 되면, 쉰다는 기쁨마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휴식의 참된 의미는 일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포드는 말했다.

    일하고 쉬고, 쉬고 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쉬게 하셨다.

    지금은 휴가철이다. 휴가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서 떠나지만, 돌아올 때면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훨씬 더 지쳐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가를 잘못 보낸 것이다.

    휴가를 오락이나 노는 일로만 생각하기에, 술집, 고스톱, … 밤새도록 놀다가 결국 녹초가 되어 버려서, 휴가 갖다 오면, 더욱 짜증나고 피곤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휴가를 보내야 할까 생각해야 한다. 안식을 취하라.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 팍'이라고 불리는 산양이 있다.
    이 산양들은 보통 20-30마리씩 떼지어 다니는데, 어떤 때는 수만 마리가 모여 이동하기도 한다.

    그 많은 양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때, 앞에 가는 양들은 다행히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뒤따라가는 양들은 먹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가는 양들이 풀을 다 먹고, 남아도 짓밟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양보다 앞서가야 풀을 먹을 수 있기에, 저마다 자꾸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양들이 너무 많기에, 앞으로 나갈 수 없지만, 뒤에서는 자구 민다.
    앞에 있는 양은 뒤에 있는 양이 뒤에서 미니까, 걸음이 빨라져서 결국에는 뛰게 된다.

    앞에 있는 양이 뛸 때, 뒤에 있는 양은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 될 텐데,
    양은 본능적으로,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기에,
    뒤에 있는 양은 풀도 못 먹고, 앞에 가는 양을 따라 같이 뛴다.

    그래서 결국 모든 양이, 초원을 달리게 되고,
    그렇게 계속 달리다보면, 앞에 절벽으로 떨어져, 결국 집단적으로 죽게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에서 뛰니까 뒤에서 뛰고, 뒤에서 뛰니까 앞에서 뛴다.

    그냥 열심히 달리다가, 벼랑이나 바다가 나타나면 멈추려 하지만, 뒤에서는 앞에 벼랑이 있는지, 바다가 있는지 모르고 계속 달리기에, 앞의 양들은 떠밀려서 벼랑으로 떨어진다.

    뒤에 오던 양도 속도를 줄이지 못해, 다 떨어져 몰사한다.
    '스프링 팍' 산양들의 무작정 달리기와 죽음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인이 바로 '스프링 팍'과 같이 살고 있다.
    현대인들은 참 열심히 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런데 이 산양같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숨차게 뛰고,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른다.

    물론 특별한 목표가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대학에 떨어질까 염려되어서 공부한다. 집단에서 이탈되는 것이 두려워서 공부한다.
    남들은 다 대학 가는데, 나만 못 가면 소외되니까, 뒤쳐지기 싫어서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간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하지만, 도대체 왜 일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일하는 것은 좋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만 하는 사람은, 비인간적인 일의 노예가 되고 만다.
    한적한 곳을 찾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영성을 재충전하고, 말씀과 영성을 재정비해야 한다.

    2. 강한 자도 쉬지 않으면 쓰러진다.
    본문의 엘리야 선지자는 18장에서, 이방신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 모두 850대 1로 싸워서 승리한 사람이다.

    18장에서, 그는 하늘에서 불이 끌어내렸고,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때, 기도해서 다시 비가 오게 했다.
    또한 아합 왕의 마차 앞에서 말보다 빨리 달려던, 철인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19장에서, 엘리야를 미워하던 아합 임금과 그의 왕비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는 좌절해서, 40일 동안 거리를 헤매면서, 시내 광야로 도망친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서, 힘없이 처량하게 죽기를 구하고 있다(4).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인생을 포기하고 죽기를 구하는 모습은, 심한 우울증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죄책감에 빠져 자신을 자학한다. 또한 의욕상실과 절망에 빠져, 모든 즐거움에서 자기를 차단시키고, 차라리 죽기를 바라다가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왜 엘리야는 좌절에 빠져서,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나? 쉼 없이 일만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엘리야가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심신이 지쳐있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항상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를 못하다.

    계속 긴장하고 살다보면, 우리의 몸도, 마음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보면, 연주를 하고 나서 꼭 바이올린 줄을 풀어준다.
    줄을 풀어주지 않고 계속 조여 놓으면, 나중에는 바이올린이 빠개져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사람도 같다. 계속 일만하면, 탄력을 잃어버려 결국 못쓰게 된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쉼이 없기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발물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현대인은 너무 많은 일에 매달려 지쳐 있다. 안식이 없다. 늘 분주하고, 평화가 없다.

    예배드리는 순간에도, 머리 속에는 내일 할 일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있다. 그래서 피곤하다.
    매일같이 일 속에 파묻혀 살기에, 일이 없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을 일 벌레라고 한다.
    쉬는 것 자체가 일이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쉼이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 할 수 있다.

    주님은 쉬라고 하신다. 끊임없이 일하라고 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피곤을 이해해 주시는 분이다. 우리에게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다.

    생각을 바꿔라. 쉬는 것도 주님의 일이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지 않고 노는 것은 방종이다.
    쉬는 것을 게으르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이기에, 잘 쉬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매우 지쳐서 죽기를 소원하는 엘리야를 보며, 쉬면서 일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3. 엘리야의 쉼
    쉼은 자신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해 준다. 쉼은 영감을 가져다 준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엘리야를 회복시키셨나?

    (1) 엘리야는 그 곳을 피하였다(3) -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쉐바에 이르렀다.
    브엘쉐바는 유다의 광야다. 한적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서로 모여서 싸우고, 고스톱 판을 벌리는 광기 어린 휴가가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로 피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회복하게 하신 다음, 하나님은 호렙산의 한 동굴로 인도하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시간을 갖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육신적으로 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영적인 교제를 통해, 다시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게 된다.

    (2) 잠을 자라(5) -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시장하자, 하나님은 깊이 잠들게 하신다.
    불면증이 계속되면, 의욕이 감퇴되고, 하루 하루가 힘들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그래서 시127:2절에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고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왕으로 꼽히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하던 시절에 겪은 수모와 위기였다.

    그때의 다윗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울며 도주했다"고 참담하게 그의 모습을 그린다.
    또한 대적들로부터 공격당할 때, 자신의 불안함을 이렇게 고백하기도 한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시3:1)

    이 불안하고 분노가 치미는 상황에서, 다윗이 어찌 편히 잠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 염려 없이 "평안히 눕고 자기도 했다"(시4:8)고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다윗은 이에 대한 이유를 2가지로 말한다.
    ① "주께서 나를 붙드셨기 때문"(시3:5)이고
    ② "여호와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셨기 때문"(시4:8)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였다.
    매일 밤 다윗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주께 의탁하고, 주께서 지키시고 해결해주실 것을 확신하며 잠자리에 들었기에,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깰 수 있었다.

    (3) 하이 터치 -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를 어루만져 주신다(5).
    고약한 기도를 드렸다는 책망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랑의 손길을 볼 수 있다.

    휴가 중에는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쉴 수 있다면,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찢긴 마음의 상처를 서로 위로함으로, 힘을 재충전하여 같이 힘있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하라.

    (4) 먹었다(6) -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육체적 에너지의 보충이 필요하다. 음식은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가 되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잘 먹고 잘 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 일도 잘할 수 있다.

    쉼은 수고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일하지 않은 자가 쉬는 것은 사치다.
    쉬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하다. 아무나 쉼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님은 풍랑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떠는 순간에도, 주무실 만큼 열심히 일하셨다.

    주님은 피곤하시도록 일하셨지만, 종종 한적한 곳을 찾기도 하셨다.
    언제나 일에만 매달려 계시지는 않았다.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안전 운행을 하기 위해서는, 쉼이 필요하다.
    대나무가 꼿꼿하게 자라는 이유는, 매듭을 잘 짓기 때문이다.
    쉼이야말로, 내 생애에 매듭을 짓는 일과 같다.

    서양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결단하고, 한국 사람들은 쉬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휴가는 정열의 계절만 아니다. 광란의 날들도 아니다.
    우리의 영적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날로,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우리 영혼을 찾아와,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날들이 되어야 한다.

    새롭게 사명으로 충전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극성맞고 소란스러운데 보다는, 조용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라.

    휴가 기간을 전부 세속적인 일들로 채우지 말라. 말씀을 가까이 할 시간을 내라.
    평소와 달리 묵상하면서 한 번 깊이 읽어보라. 우리의 영적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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