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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들
    2002-08-29 11:15:22   read : 37954

    히11:32-40
    체코의 깊은 산골에 어머니와 딸이 경영하고 있는 여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과 고독에 시달린 모녀는 어느 날부터인가 돈이 많은 투숙객이 들면 독약을 먹인 후 시체는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돈을 훔쳤습니다.
    이제 아들이 돌아오면 바다와 태양이 내리쬐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사하는 것을 꿈꾸며 꿈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돈 많아 보이는 손님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쑥한 차림의 한 청년이 여관을 찾았습니다. 모녀는 청년에게 독약을 먹인 후 강물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가 피살자의 신분증을 보고 절규합니다.
    그 청년은 바로 자신이 지금까지 기다려온 아들이었습니다.
    청년은 고향을 떠난 후 크게 성공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귀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알베르 카뮈의 희곡 [오해]의 줄거리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물질에 메여 사는 인간의 비극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할 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모녀는 돈을 바라보다가 그토록 그리던 아들과 오빠를 죽이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주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히11장에서 온갖 핍박과 시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다고 하면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주인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훈련되어 있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보는 눈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주님을 만나도 볼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약하면 삶의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되어 신앙생활이 흔들리게 되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어떠한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으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외적인 주위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적 마음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내 보이면서 그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믿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아래 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면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아니하고, 그저 이론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명분상의 그리스도인이지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불신자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들과 같이 어울리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신앙의 회의를 품게 되고 결국 신앙에서 떠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머리로 알고 감정적으로 관심을 보인다고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 열매맺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직접 손으로 피의 제사를 단에 드렸고, 노아는 직접 손으로 방주를 지었으며, 모세는 지팡이를 붙잡고 애굽을 떠났으며,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까지 데려가 그 곳에서 잡아 드리려 했습니다.
    믿음은 깨닫는 것 뿐 아니라 행동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2:26)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은 출세했다, 그 사람은 부자다, 그 사람은 많은 명예를 권세를 갖고 있다"라며 높게 평가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은 믿음으로 살았는가?"를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믿음으로 살 때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다" 라고 이야기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것들을 올바로 행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사는 삶에 실패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았다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평가하실 때 큰 믿음과 적은 믿음으로 평하셨습니다

    마태복음14:28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믿음 적은자 임을 책망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이 적은 자임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15장22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실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그러나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책망했으나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두 가지 결과가 주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중 33절부터 35절 상반절 말씀을 읽어보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축복 받은 사람들의 나옵니다.

    그러나 35절 하반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게 되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축복받는 사람이 있으며
    두 번째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축복받은 사람은 5절에 나오는 에녹을 들 수 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 결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을 당했던 대표적인 사람은 4절 말씀에 아벨입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형 가인에 의해 돌에 쳐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벨은 자기의 명을 다 살지 못하고 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삶을 산 것처럼 보여집니다.

    스데반 집사는 믿음을 지키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집사를 불행한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믿음을 지키다가 옥중에서 죽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를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축복받는 삶입니까?
    올바른 축복의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꼭 오래 살았다고 축복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축복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축복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축복받는 삶인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결과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떠한 결과가 주어지게 되든지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으로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많은 물질의 소유를 목표로 신앙생활을 원하면
    만약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마귀 사단이 다가가서 낙심하고 불평하게 만들어서 결국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지 우리에게 좋은 환경과 결과가 이루기만을 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이 주어지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환경을 만나든지
    "하나님은 좋으시고 선하신 분이십니다."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만났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았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들은 어려운 일을 당했으나 "저희가 다 믿음으로 살았다"(39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38절 본문에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8)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이 사람 상대 못할 사람일세"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이런 말을 씁니까?
    막무가내인 사람, 황당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은 “감당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볼 때 이해가 안 갑니다
    시간 뺏기고 돈 들여 교회 나가고 눈물로 죄인이라며 회개하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 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라하고 넓은 길을 놔두고 좁고 험한 길을 가라하고
    무엇하나 이해가 안되고 행동이 감당 못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 감당 못할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될수록 확실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전체가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 입니까?
    1.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가 될 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처럼 다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에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서 번제로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고난 중에 살다간 초대교회 성도들의 부활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다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구차히 면하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 땅의 생명은 어차피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다시 같은 육신으로 부활한다 하여도 그 몸은 다시 병들고 다시 죽고 맙니다.
    무덤에서 나왔던 나사로도 다시 죽었고, 야이로의 딸로 다시 죽었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도 다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이 땅 생명의 부활은 똑 같은 죽음을 또다시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부활입니다.
    다시 절대로 죽지 않는 부활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부활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숨어 신앙생활 하던 카타콤 지하동굴을 가보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였을 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험악한 곳에서도 기쁨과 소망 중에 살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더 좋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들에게 그 몸이 뜯기면서도 그들이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좋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죽으면 더 좋은 몸으로 부활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사람이 꾸며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시며 증거 하신 일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신앙으로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승리로 이끄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 신앙이 확실한 곳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모두 부활 신앙으로 굳게 무장되어 질 때 우리의 믿음생활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부활 신앙으로 굳게 무장될 때 그 교회의 영적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더 좋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이 시간 여러분의 심령에 차고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들은 죽을 각오가 된 사람(36-37)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본문을 보면 부활의 소망이 있던 성도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저들의 믿음의 능력은 고난을 감수하는 인내의 삶에서 나타났습니다.
    11:36에 보면
    1) 그들은 희롱과 채찍을 받았습니다(11:36).
    사도들은 새 술에 취한 자로 오해를 받았습니다(행2:12).
    바울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으며 굶주림과, 목마름, 매맞음, 헐벗음이 계속되었습니다(고후11:16-33).
    2)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1:36).
    예레미야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고후11:23).
    세상 감옥이라고 하는 장소가 악인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신앙의 죄목 때문에 들어갔던, 고난의 가시밭도 되었습니다.
    3) 돌로 침을 받았습니다(11:37).
    선지자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실을 말하다가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증거 하다가 동족인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행7:59).
    4) 톱으로 켜서 죽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1:37).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 의해 톱에 의해 죽었다고 합니다.
    5)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했고 양과 염소의 가죽옷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도 그러했고(왕하2:8), 세례 요한도 그러했습니다(막1:6).
    그리고 역대 환난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앞서간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 인생 길을 걸었습니다. 광야와 암혈과 산중과 토굴이 저들의 거처가 되고 말았습니다(히11:38).

    초대교인들은 산 사람이었지만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내려가 순교자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카타콤이라는 동굴 속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바로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채찍질 당하고, 결박되고, 옥에 갇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일사각오'를 하신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을 각오로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이 세상 건너편에 천국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으며 피곤함이 없습니다.
    세상 건너편에 있는 것은 주님의 나라입니다. 영생의 세계입니다.
    완전하고 거룩한 세계입니다. 바로 주 예수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험한 인생을 향한 사람들이 갖는 하나님의 소망스러운 약속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이김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죽을 각오로 사는 사람이란 순교자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순교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죽기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을 각오를 갖고 신앙 생활 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은 죽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들은 고난 중에도 예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죽을 각오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을 각오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죽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할 때, 광야길이든 토굴이든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중에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며 의지하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순종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라도 우리 성도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 중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하나님과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나치게 세상일에 분주하여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늘 우리들의 귓가에 들려집니다.
    그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열린 귀를 소유한 사람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되 심금을 울리는 소리로 듣지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게 잡는 성도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도가 됩니다.

    놀란트 헤이즈라는 흑인 가수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독창회에 모여든 사람은 모두 백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헤이즈가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검둥이 노래를 집어치워라" 욕설과 함께 물건이 날아왔습니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입니까? 가수 자신도 이에 맞선 욕설을 내 뱉었습니다.
    그렇게 맞받아 욕을 하고 돌아서는데 그의 앞을 가로막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모욕을 당하시면 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헤이즈는 그 환상을 보고 청중 쪽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소란스럽던 청중들도 그 모습을 보고 태도가 바뀌었고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게 1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헤이즈는 목소리를 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청중을 뜨겁게 사로잡는 훌륭한 독창회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흑인 가수가 가졌던 10분 동안의 묵상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아픈것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고난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 흑인 여가수처럼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빌라도 법정에 서신 예수님을 생각하시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한 사람(39-40)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의 인물들은 믿음으로 많은 증거를 얻은 선배들이었나 온전한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볼 수 있는 약속을(히12:1-2) 받은 자들이기에 더욱 온전한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전한 약속의 말씀을 받은 자들로서 더욱더 온전한 믿음을 갖고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에만 메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인생에도 면류관이 있습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법대로는 운동경기의 규칙을 말함이요
    법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사는 것이 바로 죄이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적지와 결승점이 분명한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믿음,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들 중에는 믿음으로 증거자의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서는 다 약속을 수여 받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더 온전하고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더 좋은 것> 그것은 이 땅이 줄 수 없는 의의 평강이요 의의 기쁨입니다.
    의란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은 거룩한 것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천국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끔 천국을 보고 왔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개인의 신앙체험이지 우리 모두의 신앙체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갔다 왔거나 천국을 눈으로 보았기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요 20:29 보면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증거입니다

    히11:1에“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실상’과 ‘증거’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못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던 주님은 바로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열심히 나아가 믿음의 증거가 되고 믿음의 실상이 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세상이 감당 못할 성도들'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하여 "반드시 축복 받아야만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것이 올바른 믿음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며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어찌 자식에게 선한길로 인도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에 어떤 환경에 닥치든 어떤 일이 주어지든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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