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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귀한 사람(1)
    2002-10-16 11:36:10   read : 32409

    잠언 3:27-35 // 2002년 10월 13일

    잠언 3장 4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존귀(尊貴)한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비천(卑賤)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면 존귀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흔히 이 세상에서는 얼굴이 잘 생기고, 집안이 좋고, 교육을 잘 받고, 똑똑한 사람을 존귀하게 봅니다. 그 사람의 속을 보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 중에는 학력도 좋고, 권세 있는 집안 출신에다가, 또 돈도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사울 왕 다음에 왕이 될 재목(材木)을 이새의 아들 중에서 고르는 장면에서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中心)을 본다"(삼상 16:7).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본문을 통해 어떤 사람이 존귀한 사람인지를 살펴봅시다.



    1. 선을 베풀기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27-28절에 보면,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요약한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고, 생명까지 내어 줌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힘입었기에, 아낌없이 우리 자신을 내어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을 베풀 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선을 행하며 사는 게 마땅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더 테레사 수녀를 참 좋아합니다. 그분은 종종 사람들이 무상으로 나누어주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을 망쳐놓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자들을 망치는 여러 수녀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망치는 수녀회가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군요."



    본문을 보면, 필요를 느끼는 사람에게 내일 주겠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저하지 말고 '즉시' 선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베풀기가 어렵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풀어주신 훌륭한 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공기(산소)를 돈을 주고 숨쉬지는 않습니다. 햇볕도 하나님이 무상으로 주신 것입니다. 생명도, 시간도, 소유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 몇 푼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나누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아낌없이, 인색하지 아니하고, 풍성히 나누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또 이렇게 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까닭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투지 않는 사람입니다.

    29-30절을 새 번역으로 보면, "너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 너의 이웃에게 해를 끼칠 계획은 꾸미지 말아라.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과는, 까닭 없이 다투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식을 말씀한 것입니다. 평화롭게 사는 사람을 까닭 없이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해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네 곁에서 안연히 산다"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신뢰 가운데 평화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해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라쉬"라고 하는데, 그 뜻은 본래 "긁다, 쟁기질하다"라는 뜻으로 농부가 파종하기 위해 밭을 갈 듯이 남을 해(害)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편안하게 무방비상태로 사는 사람에게 가서 갑자기 악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정말 나쁜 것입니다. 이렇게 안 하는 것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긁고 괴롭히는 일은 악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성인(聖人)은 "네가 싫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교훈 한 적도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웃이 우리에게 악을 행하거나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이상 그들과 다투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악한생각을 품고있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건강할 수도 없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한 생각도 질병의 한 표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생각을 멀리해야 한다." 남을 해하고자 하는 악한 생각은 사실 증오나 분노나 탐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불편함만 안겨주는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낼 때, 우리 마음은 불편해 지고, 이렇게 불편한 마음상태가 계속되면 몸에 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달라이 라마).



    남을 해하고자 하는 악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완전히 다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시간 모두 다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아 버리십시오.



    3. 겸손한 사람입니다.

    34절에 보면,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한 태도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18:12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고, 29:23에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하여튼, 교만해서 잘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교만하면 망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존귀(尊貴)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존귀한 삶을 살려면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것은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쩔쩔 매면서 비굴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저는 사무엘 선지자야말로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태도를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어릴 때 그는 엘리 제사장 곁에서 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주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눈이 어두워져 잘 볼 수 없는 엘리 제사장이 잠자리에 들었고, 사무엘도 주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들어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주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신 줄 알고 쫓아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또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신 줄 알고 갔었습니다. 세 번째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또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제서야 사무엘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다시 주님이 찾아와 곁에 서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10)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바로 사무엘이 가졌던 태도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말씀대로 사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천하며 살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함은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무언가 되었다"는 교만한 생각이 고개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지도자라는 말이 별로 쓰이지 않습니다. 종이라는 말이 대신 많이 쓰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야웨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종은 말 그대로 섬기는 자(봉사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되려면 섬기는 것이 몸에 배야 합니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구약학을 가리키는 왕대일 교수는 그의 책 『목회자의 실패, 목회자의 성공』에서 영적 지도자와 세상적인 지도자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세상적인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자신을 믿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사람을 알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을 안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자기 결단을 중요시하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야망에 넘치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겸손하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관계와 원리를 따라간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명령을 내리기를 즐기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순종하는데서 기쁨을 얻는다. 세상적인 지도자는 보상을 바라지만, 영적인 지도자는 사랑을 원한다.



    영적인 지도자였던 바울은 남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래서 늘 "주여, 나를 쳐서 복종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자꾸 우리는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쉽습니다. 무슨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을 잊기가 쉽습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지면 결국 잘못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그 교만 때문에 그는 망했습니다. 교만한 그에게 악신이 들어감으로써 그는 망령된 행동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을 멸망의 선봉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 처럼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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