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친구 선택할 때 7가지 기준 /방황하던 목회자 자녀들, 뉴질랜드만 가면 ‘180도’ 변화 2016-09-09 11:37:34 read : 4981
예수님께서 친구를 선택하실 때 고려하신 7가지 기준
처치리더스닷컴 최근 기사에서 소개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매체인 처치리더스닷컴은 최근 ‘예수님이 친구들을 선택하신 방법과 이유’에 관해 언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구를 선택할 때, 성경보다는 세상적이고 가벼운 개념을 갖기 쉽다.
이 매체는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더 이상 종이 아닌 친구로 부르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관계에 있고 사역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지혜롭게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면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교제는 하나님나라의 푯대를 앞당기기 위해 누군가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과 함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쉽게 친구라 부르거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로 친구를 선택한다. 친구를 선택하는 것은 축구 경기를 함께 즐기거나 단순히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면서 예수님께서 친구를 선택하신 7가지 기준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기도를 하셨다.
누가복음 6장 12~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12명을 선택하시기 전에 밤낮으로 기도하셨다. 이것은 그분이 친구를 선택한 것이 무계획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준 역시 그러해야 한다.
2. 그분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요한복음 15장 1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대로 하면 나의 친구니’라고 말씀하신다. 믿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목적이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을 가까운 친구나 믿을 만한 친구로 두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과 단순히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인도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이 ‘죄인들’은 이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 예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 아니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 믿음, 사랑과 평화를 좇으라고 하셨다(딤후 2:22).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진지하게 좇고자 하지 않는 이들과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다.
3. 예수님은 가까이 있을뿐 아니라 보내기 위해 친구들을 선택하셨다.
마태복음 3장 14절은 예수님께서 친구로 선택한 이들에게 처음 건 기대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성경 공부와 회당 참석 뿐 아니라 ‘삶을 사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에게 두신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가서 설교를 전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으며, 예수님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데 어떻게 그분을 알 수 있을까? 서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인격적으로 알기 전까지 쉽게 누군가를 친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4. 예수님은 마음을 나눌 친구를 선택하셨다.
요한복음 15장 15절 말씀은 예수님은 자신을 이해했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 예수님은 친구들에게 “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전을 믿지 못한다면 그들이 진정한 천국의 친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예수님은 친구들을 주도적으로 선택하셨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임을 가르쳐주신다. 이 구절이 구원에 대한 것을 의미하긴 하지만, 또한 친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그분의 방법론을 보여주고 있다. 부르심에 근거해 친구를 선택하시는데 있어서 매우 주도적이셨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누구와 우정을 추구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단순히 여러분 가까이에 있고 싶어하는 이들을 선택하지 말라. 적극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친구들을 사귀라. 예수님께 가까이 있길 원했던 모두에게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분은 먼저 3명과 가까운 관계성을 맺으셨고, 12명, 그리고 70명, 그리고 무리들 순이었다.
다른 이들은 삶의 짧은 순간에 주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나라에서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
6. 예수님의 친구들은 어려운 말씀도 받아들였다.
요한복음 6장 66~68절까지 그분의 제자들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들이 주님을 단순히 일시적으로 따랐던 이들과 구별됐다. 진정한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려운 말씀을 하시거나,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실 때에도 여러분의 곁에 있을 것이다.
7. 예수님의 친구들은 그분이 시험을 받을 때에도 함께 했다.
누가복음 22장 28~29절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그분이 이 땅에서 시험을 받을 동안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사람들 중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드러내시기 위해 여러분에게 심각한 개인적 혹은 사역적인 시험을 견디게 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좋을 때 뿐 아니라 어려운 시기에도 여러분에게 신실함을 보여주는 이들과 우정을 쌓아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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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 헌금, 로비 자금으로 쓴 교회
법원 인정한 봉천교회 비자금 장부 들여다보니…8개월 동안 3억 9,000만 원
▲ 교회 갈등도 '돈'으로 해결되는 것일까. 분쟁을 겪던 교회는 교단 실력자들에게 검은돈을 전달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조용히 묻힐 뻔했던 한 교회 비자금 장부가 공개됐다. 장부에는 노회와 총회 실력자들에게 돈을 전달한 날짜, 액수, 전달자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검은돈은 교계 언론사로도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교회 통장에서 비자금이 빠져나갔던 시기는 교회가 둘로 갈려 싸우던 어지러운 때였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봉천교회 이야기다.
로비 내역을 담은 장부는 2014년 5월 초 발견됐다. 몇몇 교인이 교회 컴퓨터 외장 하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장부 파일을 발견했다. '예비 자금 운영에 관한 내역'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에는 2012년 6월부터 2013년 2월까지 8개월치 돈 흐름이 기록돼 있었다. 이때 교회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은 3억 9,000만 원에 달했다. 4억에 가까운 교인 헌금이 교인 모르게 사용된 것이다.
재정은 원로목사 측근 장로 2명이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부가 발견됐을 당시 교회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재정 감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원로 측 장로들은 "누군가에 의해 장부가 위조·변작됐다"고 주장했다. 재정 로비 문제 제기에 맞서 장부 '위조·변작'으로 프레임을 전환했다. 원로 측 주장은 먹혀들었고, 그렇게 장부는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비자금 장부에 이름 오른 총회 재판국장, 헌법위원장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8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전 총회 재판국장 오 아무개 목사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죄목은 배임수재. 오 목사는 "재판을 잘 봐 달라"는 봉천교회 원로 측 장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00만 원을 받았다. 오 목사는 장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엑셀 파일이 위조·변작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디지털수사과에 의뢰했고, 조사 결과 손댄 흔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장부의 신빙성을 인정한 것이다. 로비 장부에는 오 목사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2012년 당시 총회 재판국장이었던 장 아무개 목사는 7~9월, 여섯 차례에 걸쳐 1,1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재판국 서기였던 전 아무개 목사는 6~9월, 네 차례에 걸쳐 760만 원을, 재판국 회계였던 엄 아무개 장로는 150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재판국원 외에도 총회 헌법위원회 관계자들에게도 돈이 흘러간 것으로 나왔다. 당시 헌법위원장 김 아무개 목사는 2012년 7~12월, 세 차례에 걸쳐 37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헌법위원회 전문위원 최 아무개 목사도 7~8월, 두 번에 걸쳐 2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됐다. 교단 재판 관련자에게 흘러간 로비 자금은 총 3,000만 원에 이른다.
▲ 봉천교회 원로목사 측이 작성한 예비 자금 장부. 법원은 엑셀 파일 최종 저장 일자가 고발인이 해당 자료를 획득하기 이전이며, 파일을 저장한 이도 원로 측 장로라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봉천교회 원로 측 장로들은 재판국원을 대상으로 왜 로비를 했을까. 앞서 언급했듯 당시 봉천교회는 둘로 나뉜 채 갈등하고 있었다. 원로목사는 2010년 12월, 장로 22명 중 13명에게 출교·면직·정직·견책 처분을 내렸다. 후임 목사 청빙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장로들을 무더기로 징계한 것.
장로들은 반발했다. 당회원 절반에 해당하는 장로 13명을 치리할 수 없고, 기소위원회와 재판국도 꾸리지 않는 등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회와 총회에 재판을 제기했지만 장로들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총회 재판국은 2012년 4월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봉천교회를 살려야 한다"며 원로목사 손을 들어 줬다.
총회 재판국 판결에 반발한 장로들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해 7월, 본안 소송 전까지 총회 재판국 판결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사회 법정이 교단과 다른 판결을 내리자, 원로목사 측은 대책을 강구했다. 교단 헌법해석위원회를 거쳐 총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징계를 받은 피고가 아닌 원고가 재심을 요청한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징계받은 장로들은 "사회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 "재심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총회 재판국은 일방적으로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과 정직 11월 2명, 시무해임 10월 2명, 해벌 3명으로 나왔다. 이전 판결보다 징계 수위가 완화됐다.
피고가 요청하지도 않은 재심을 총회 재판국이 집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재심 판결을 받은 박의관 장로는 "총회 재판국 판결이 법원에서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서둘러 재심한 것이다. 만일 법원이 총회 재판국 판결이 무효라고 판결을 내리면, 재심 결과를 가지고 우리를 옥죄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헌법위원회는 재심이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고, 총회 재판국은 법원 가처분 판결이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재심 판결을 내렸다. 박 장로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서 총회 실력자들은 검은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장부는 진짜지만, 돈 주고받은 사람은 없다?
장부에 기록된 당사자들은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뉴스앤조이>는 관련자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장부에 돈을 받았다고 적혀 있는 5명 중 3명만 연결 됐고, 나머지 2명은 닿지 않았다. 당시 총회 재판국장이던 장 아무개 목사는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총회 안에서 돈이 오간 내용은 잘 모른다. 우리가 재판한 내용은 총회가 만장일치로 보고를 받을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로비 문제는) 나와 뒤떨어진 이야기니까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봉천교회 장로들을) 만나긴 했지만 금전이 오가지 않았다. 나로서는 아주 황당하다."
총회 재판국 회계였던 엄 아무개 장로는 "전혀 받은 적 없다. 그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장부를 작성한 거다. 연락은 몇 번 왔지만 잘 안 만났다"고 짧게 해명했다. 당시 헌법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 최 아무개 목사는 "오래돼서 봉천교회 일은 잘 기억 못 한다"고 답했다.
돈을 건넨 원로목사 측 관계자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이 아무개 장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개된 장부는 원로목사가 빌려준 돈을 쓴 내역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배달을 하지도 않았고 장부의 진위 여부도 모르겠다는 주장이다. 법원이 장부가 조작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하자 "그건 판사의 판단일 뿐이다.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백 아무개 장로는 "판결과 상관없이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징계를 받고 교회를 떠난 박의관 장로는 이번 일과 관련해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보통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회법으로 가지 말고 교단법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우리는 억울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했다. 총회 재판국은 '억울한 건 알지만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상소를 기각했다. 세상에 이런 판결이 어딨는가. 그리고 요청하지도 않은 재심까지 했다. 돈이 오가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로 드러나니 허탈하다. 공정한 판결을 내려 달라며 쫓아다닌 우리만 바보됐다…어찌됐든 지금은 교회를 떠난 상황이고, 이것도 하나님의 방법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용역비‧변호사비‧선물비…언론사 로비까지?
장부를 보면 돈은 재판국원 외에도 여기저기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큰 액수는 용역비다. 원로 측은 반대 측 장로와 교인들이 예배당을 점거하자 용역 100여 명을 투입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8,070만 원에 달했다. 교인이 낸 헌금이 교인을 쫓아내는 일에 쓰인 것이다.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수임 비용으로 3,260만 원을 지출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지만 당시 노회장과 재판국장 앞으로 수십만 원에 이르는 한우 세트도 선물한 것으로 나왔다.
눈에 띄는 항목도 있다. 기독교계 언론사 앞으로 670만 원이 흘러한 것. 2012년 10월~2013년 1월까지 12회에 걸쳐 돈이 전달된 것으로 나왔다. 이 언론사는 교회 분쟁 당시 원로목사에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관계자는 9월 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배달 사고가 난 것으로 안다. 이00 장로가 돈을 배달한 것으로 아는데, 나한테 돈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당사자 이 장로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당분간 통화할 수 없다는 안내 음성만 나왔다.
▲ 봉천교회는 5년 만에 분쟁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원로목사 측 장로들은 "분쟁도 끝났고 잘 지내고 있다. (로비 사건은)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4억에 가까운 돈은 원로목사 은퇴비에서 차입한 것으로 확인했다. 2010년 은퇴한 원로목사는 은퇴비로 8억 원을 받기로 했다. 원로목사 은퇴비를 미리 당겨서 로비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로 측 장로들은 로비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로비 자금을 관리해 온 백 아무개 장로에게 관련 사항을 질문했다. 백 장로는 "이번 주 일요일이 교회 50주년이다. 와서 취재하고 좋은 기사나 써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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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잠기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 ‘감동’
▲NAYCRUMORS 캡처
태풍이 강타해 교회가 침수됐는데도 아랑곳하지않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새삼 화제입니다.
2015년 10월 슈퍼 태풍 랜도가 필리핀을 강타해 무릎까지 잠기는 최악의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진이 한 기독교 커뮤니티에 게재되며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파괴적인 폭풍으로 2만4000명이 대피하고 전국에서 최소 58명이 사망, 1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홍수 피해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팜판가 마산톨 지역의 한 작은 교회는 예배를 쉬지 않고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성도가 자신의 SNS에 침수된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사진을 올려 수천개의 '좋아요'를 받고 많은 네티즌이 공유했습니다. 심지어 113만의 팔로워를 가진 필리핀의 유명 배우 마리오 로페즈도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을 공유하며 감동을 전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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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딸들의 친정엄마 김선옥 목사
[인터뷰]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늘푸른자립학교 운영…거리 위 아이들 보살핀 지 20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목사인데도 목사 호칭 대신 엄마로 불리는 여자가 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는 한 명이지만 그녀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모두 딸이다. 오는 딸 팔 벌려 안아 주고 나가는 딸 안 붙잡는다고 말하는 그는, 새날교회 김선옥 목사다.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새날쉼터)에서 가정 폭력, 성폭력에 노출돼 인생의 고난을 일찍 경험하는 아이들과 20년 가까이 지내 왔다. 10년 전부터는 딸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려고 늘푸른자립학교를 세워 새 출발을 돕고 있다.
▲ 김선옥 목사는 '목사' 대신 '엄마'로 더 많이 불린다. 20년 가까이 가출 청소녀들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엄마가 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 사역에는 김 목사 어머니가 큰 영향을 끼쳤다. 김 목사 어머니는 강원도 영월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약사 출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김 목사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약을 들고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영월 산간 오지를 다니며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자식은 기운 옷 주고 교인은 새 옷 주는 엄마 모습이 미울 때가 많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무의식이 이때 형성됐다. 다니던 교회가 둘로 쪼개지고, 같이 교회 다니던 청년들도 교회에 염증을 느껴 떠났지만, 김 목사는 그럴 때일수록 신학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1979년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한 김선옥 목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빈민 운동에 뛰어들었다. 빈민 교회로는 국내 1호 격인 사당 희망교회에서 봉사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목사 남편과 아예 희망교회에 부임해 5년을 거기 살았다. 그때부터 '목사님' 혹은 '사모님' 칭호는 포기했다. '예은 엄마' 또는 '엄마 선생님'으로 불렸다.
오는 딸 반기고 가는 딸 안 잡는다
빈민 운동과 노인 사역에 매진하는 김선옥 목사에게 감리교 선배 여성 목사들은 새로운 사역을 권유했다. 가출 청소녀를 보살필 적임자로 보고, 1998년 문을 연 새날쉼터를 그에게 맡겼다. 김 목사에게는 전혀 낯설 게 없었다. 빈민 사역 시절부터 봐 온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거기에도 있었다.
대학 때 접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입식 교육,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 대신 해방의 교육, 인간을 주체로 보고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교육을 말하는 데, 거기에 확 꽂혔어요."
김 목사는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간 것을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라고 규정한다. 탈출한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사랑'.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자양분을 주는 것을 사역 목표로 삼았다.
"새날쉼터에 온 아이들은 거의 다 가정 폭력·성폭력 피해자들이에요. 성장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 아이들이죠. 그 경험이 없으니까 세상이 두렵고 이유 없이 화가 나요. 남을 때리거나 빼앗는 방식으로 화를 표현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요. PC방이나 집안에 갇힌 생활을 하죠."
거리 생활은 무섭지만 한편으론 재밌다. 가출팸(가출+패밀리)끼리 사는 게 집에서 사는 것보다 좋다.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고,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도 없다. 그러다 남자를 만난다. 학대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줘도 그 사람을 의지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어른'이라는 센 존재가 함께하기에 안정감도 느낀다. 그렇게 잘못된 관계가 시작되고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태반이다 보니 사랑 주기도 바쁘다. 혼낼 시간이 없다. 이때를 놓치면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평가하지 않는다. 거리의 무법자처럼 살다가 무작정 들어오고 무작정 나가니 복장 터질 법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제가 생각해도 낯선 환경에 들어오는 게 두려울 것 같아요. 공동체 생활 힘들죠. 수용 시설 같고. 선생님은 5명이나 있고요. 떠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다시 올 생각 있으면 오라고 명함은 줘요. 잡지는 않아요. 구구절절 붙잡거나 설명하지 않으니 오히려 애들이 좋아해요."
1주일만 지나면 어색함이 옅어진다. 선생님도 친구나 이모 같아서 처음 온 애들이 "여기 이상한 곳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담배도 마음대로 필 수 있다. 어차피 못 하게 해도 몰래 한다는 걸 알기에 굳이 막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술'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운다. 아이들 중에 폭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보며 생긴 학습 효과 때문에 상당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1999년, 아이들과 단체로 간 캠프 마지막 날. 조장 둘이 오더니 "우리 그동안 술 너무 열심히 잘 참았는데, 캠프 마지막 날이니 술 사주면 안 돼요?" 물었다. 캠프 잘한 보상으로 술 달라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줄기차게 요구했다. 선생님들끼리 회의가 시작됐는데 주자는 쪽과 말자는 쪽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얘네들이 술을 잘못 배운 애들이예요. 술이 목적이었던 거죠. 술 먹기 위해 성매매하고, 남의 것 빼앗고… 회의 끝에 아이들과 타협했어요. 자기가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주자. 술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자."
"콜!" 술을 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소주를 요구했다. 소주를 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캠프 잘한 것 깨진다. 대신 맥주 한 캔을 주겠다" 하니 그거라도 어디냐며 협상이 성사됐다. 맥주 한 캔은 저녁 9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선생님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술이 긴장을 풀게 하고, 사람 사이 놓인 담장을 낮춰 주는 수단임을 알게 됐다. 1999년의 이 경험은 2016년까지 새날쉼터 원칙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나니 술 먹으러 쉼터 나가는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 술, 담배, 임신. 접근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김선옥 목사와 활동가들은 새날쉼터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계도하려 들지 않는다. 엄마처럼, 이모처럼 대하다 보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쉼터 아이들 중 상당수가 늘푸른자립학교에 나와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늘푸른자립학교)
임신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새날쉼터에는 임신해서 들어오는 10대가 많다. 와서 대놓고 "애 지워 주세요"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를 낳은 사례가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각에 빠져 사고 난 경우가 많다.
출산 여부를 아이들이 선택하게 하지만 그에 따르는 위험도 상세하게 알려준다. "낙태했을 때는 몸이 망가진다. 남자 친구와 관계가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 심리적으로 모성애 본능이 생기기 때문에 죄책감이 어마어마하다. 낙태한 이후 삶이 힘들 것이다. 너희 언니들 모습이고 너희들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낳을 경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자세히 알려준다.
다행히 요즘은 미혼모에 대해 점진적이나마 관대해지고 있어 시설과 복지 지원이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낳아서 직접 키우는 추세다. 쉼터에 임신한 아이가 있으면 또래들이 담배도 가려서 피고 먹고 싶다는 것도 챙겨 준다. "애기 듣겠다"며 욕설도 자제한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했고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게 혼용되기 시작해요. 거리 생활은 길어지고, '이거 무섭기도 한데 재밌기도 하네'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집을 나왔는데 보살펴 주는 어른이 없잖아요. 힘센 남자 만나면 거리 생활이 안전하기도 하죠. 몸을 의지하게 되고,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꼬시면 금방 넘어가고… 아이들은 유년기에 학대당한 기억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요. 그래서 누군가 다정하게 대해 주면 금방 넘어갑니다. 나를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거죠."
신앙도 강요하지 않는다. 김선옥 목사는 아이들을 크리스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한 인간이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을 보낸 미션을 깨닫게 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리교 여성 목회자들이 만든 기관이고, 자신이 목사고,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철학이 있지만 그것이 직설적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예수 믿으라고는 하지 않지만 김 목사와 활동가 삶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생각이 들게 하자는 게 목표다. 그렇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언어를 이해하게 되고, 자립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집사 된 딸도 있고, "엄마! 심방하러 와 줘" 전화 거는 딸도 있다.
▲ 아이들은 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합격한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기술도 익히고, 인턴십도 체험한다.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립의 첫걸음을 뗐다. (사진 제공 늘푸른자립학교)
'아이들에게 기술을' 늘푸른자립학교
삶이 불안정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제도권 학교로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게 아이한테도, 학교에도 할 짓이 못 됐다. 밤낮이 다르고 언어와 화장과 패션이 다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학교도 두렵겠구나, 김 목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안 학교에도 보내 봤는데,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대안 학교도 입학과 졸업 시기가 정해져 있으니 아이들이 소년원이라도 다녀오면 모든 게 초기화됐다. 학비도 부담이 됐다. 대안 학교라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할 때 오는 박탈감도 문제였다.
김 목사는 아이들에게 '프레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일과 교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경을 마련해 준 이 교육 방법이 아이들에게 적합하겠다 생각했다. 입학과 졸업에서 자유로운 학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를 꿈꾸며 설계도를 그렸다.
길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열렸다. 2009년, 서울시가 대안 학교를 추진하면서 김 목사를 자문위원으로 불렀다. 평소 꿈꿔 온 바를 참고하라며 내놓았는데, 서울시에서 "김 목사님이 맡아 달라“ 요청해 왔다. 3개월 만에 홍대에 늘푸른자립학교가 생겨났다. 쉼터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학교에 오는 10명 중 7명은 쉼터 아이들이지만, 자기 집에서 오가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오전에는 국영수 등 기초 과목을 공부한다. 오후는 정서 안정을 위한 시간이다. 스스로 꾸는 꿈이라는 뜻에서 '자몽'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억압된 아이들 내면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데려다 앉혀 놓고 상담하는 건 하지 않는다. 이미 여기저기서 숱하게 받아 봐서 지겨워한다. 대신 악기 하나씩 쥐어 주면 효과가 좋다. 아이들은 악기를 다루며 내면을 발산한다.
검정고시 이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 올해 9월부터는 직업 탐색 학기를 시작한다. 직업 관련 캠프를 열고, 원하는 직업을 탐색하거나 체험하는 시간이다. 곧바로 취업에 연계돼 인턴 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다.
▲ 김 목사를 도와 서울신학대학교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한 이들이 늘푸른자립학교 일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직장에 붙으면 비로소 독립할 때가 온다. 독립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부담되는 일이다. 그래서 쉼터 근처에 방을 얻으라고 권한다. 마치 친정집처럼, 쌀 떨어지면 언제든 오라 한다. 자립했다가도 잘 안 되면 돌아오라는 거다.
"한 명은 15살에 쉼터에 왔어요. 길거리에 내몰려 벤치에서 자던 애를 동네 아줌마가 데려왔어요. 끊임없이 성폭력 당하고 성매매에 유입됐던 애예요. 자립해서 살다가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결혼하려 마음먹었는데 거리 생활과 성매매 때문에 알코올중독인 거예요. 스스로 '결혼했다가는 신랑이랑 아이들 다 망하겠다' 생각했나 봐요. 전화가 왔어요. '엄마랑 살면서 뭘 배우면 안 될까? 술을 끊고 싶은데 도저히 혼자선 안 될 거 같아. 엄마 옆에 있으면 나을 거 같아' 하는 거예요."
33살 나이에 친정에 돌아온 딸은 처음 두 달 김 목사를 아주 괴롭혔다. 멀쩡한 상태에서 주정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렇게 고비를 넘고, 정신과 약도 끊었다. 지금은 기술을 잘 배워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딸은 조만간 다시 독립할 계획이다.
"은퇴요? 꼰대 됐다고 느낄 때…"
60살을 바라보는 김 목사의 목표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잘못해도 엄마처럼 안아 주고, 다그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넉넉한 마음을 계속 갖고 싶다.
은퇴 시기를 물었다. 그는 딸 같은 아이들이 더 이상 딸 같아 보이지 않을 때, 엄마 또는 할머니 같은 김 목사가 학주 선생처럼 보일 때, SNS 신조어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때가 은퇴 시기 아니겠냐며 깔깔 웃었다.
"새날은 친정집 같은 곳입니다. 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 만드신 피조물에 능력이 있다고 믿고요. 10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요. 그저 우리는 빈자리 하나 내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변하는 거 같아요."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주기철 목사와 물산장려 운동을 이끈 조만식 장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장로 등을 배출한 역사 깊은 교회인 산정현교회 담임 김관선 목사님을 만났다. 김 목사님은 최근 <리셋(두란노)>이란 책을 출간했다.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때 다시 '리셋'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김 목사님은 지금 한국교회가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 목사님으로부터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김관선 목사님 본인과 산정현교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난 1995년 1월 1일부터 시무를 시작했습니다. 39살에 부임했는데, 부목사 경력 1년의 목사가 부임해 보니 1906년 평양에서 설립돼 89년 된 역사적인 교회의 무게가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주기철 목사님의 이름이 주는 그 중압감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목사 안수 받은 지 1년여 된 목사이기에 아무런 정치적인 생각이나 욕심 없이 순수하게 말씀으로만 교회를 바르게 세워 가는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계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1922년에 장로로 세움 받은 민족 지도자 고당 조만식, 부임한 첫해 성탄절에 천국으로 가신 '한국의 슈바이처' 성산 장기려 장로님 등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과거가 아닌 현재에 구체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부임 22년째를 맞은 올해 돌아보니, 한국교회 안에서 저희가 '큰 교회'가 아닌 '큰 일 하는 교회', '비대한 교회'가 아닌 '건강한 교회'로 인식되어 있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리셋>을 출간하게 된 동기와 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산정현교회 부임 이후, 계속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만 설교하겠다는 자세로 본문과 씨름하면서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 안에 너무 많은 복음과 말씀의 왜곡이 자리잡고, 또 그것이 말씀에서 벗어낫다는 인식조차 없이 교회가 방향을 바르게 잡지 못한 채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선포하는데도 처음 듣는 것처럼 또는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잘못된 의식과 가치를 바로 잡기 위해 말씀 사역을 계속 했습니다. 타교회 집회나 교단 행사에서 말씀을 전할 때는 더욱 이런 부분에 집중하고, 글쓰기 등에서도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설교집이나 책을 내자는 제안이 그 동안 많이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 쓰고 한참 후 다시 읽으면 책으로 펴내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던 것이, 만 60세가 되었고 교회도 올해 110주년을 맞으면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고민하던 것들, 강단에서 강조하던 것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많이 말하지 않던 것들을 활자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개의 원고를 본 두란노서원에서 격려해 준 것이 용기를 내는 힘이었습니다.
고민 중에 '리셋 RESET'이라는 표제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말씀에서 어느새 멀어진 교회를 말씀으로 원위치 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 것이지요. 왜곡된 복음과 교회관, 예배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한 성경적 고민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이 정말 의도하는 것이 이 시대에 제대로 해석되고 선포되는지를 스스로 묻는 작업이었습니다. 삶과 신앙이 너무 벌어진 현실에 아파하면서, 본문 말씀 속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나만 바르고 모두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책에 담겼습니다."
-목사님의 책에서 비유적으로 '버그(bug)'라는 말이 나옵니다. 컴퓨터 용어인 '버그'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즉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버그'라고 표현하면 오해할 분들이 계시겠지만, 오늘날 복의 개념은 이미 세상의 흐름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좋다고 평가되는 학교, 회사, 그리고 그런 자리에 올라가야 복이라고 믿고 축하하는 이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 그 중 하나이겠지요.
교회와 성전의 혼동으로 인해 진정한 교회관이 혼란에 빠졌지만, 건져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성전 건축'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교회가 건강한 성도들의 삶을 세워줘야 하는데, 교회를 위해 가정도 가족도 뒤로 해 버리는 모습을, 열심 있는 신앙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내 삶의 현장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이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책에서 '종교개혁자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복음에 어떤 변질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종교개혁자의 신앙이란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지요. 복음이 앞에서 언급한 성공지향주의, 물량주의로 변질된 것입니다.
교회를 예배당 규모나 모이는 사람의 수, 연간 예산으로 그 규모를 말하려 한다면 복음은 이미 병든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곳곳에 왜곡된 복음이 사람들을 끌어가면서 스스로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감옥에서 모진 고문에서도 살아나야 승리라고 생각했다면 심각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로 떡을 만들고 십자가에 달렸지만 내려오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이 복음이라고 여긴다면, 주님께서도 당황하실 일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가 추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개혁을 말하기보다, 말씀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성경공부나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보다, 말씀 속에 깊이 들어가 말씀을 통해 교회도, 인생도, 가정도 바르게 세워가야지요.
뛰어난 효과를 내는 성경공부 교재보다, 성경 본문을 스스로 읽고 그것을 통해 내 삶을 바꾸고 성장시키는 힘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성경 보는 눈을 열어주고, 그렇게 얻은 감동이 삶에 구체적으로 실현되면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치인이나 교육자, 사업가, 일반 직장인들이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이고 거기서 하는 일상을 하나님이 맡기신 일로 여기도록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목사가 하는 교회에서의 일이나 집사님이 출근해서 일하는 그것들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건강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원론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체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한다면 그 공동체가 교회이지요. 두 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였기에 주님께서 거기 계시는 모임이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수많은 프로그램이 교회를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구원받은 은총을 감격스러워하며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은 '예배'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라면 그 곳이 길거리이든 산 위든 성전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그 예배를 통해 주신 감동을 행동으로 옮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기꺼이 흩어져 세상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건물에 집중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산정현교회'라는 이름도 '부동산으로서의 예배당'이 아닙니다. 에베소나 빌립보 교회처럼 산정현이라는 지명을 붙인 예배 공동체요, 구원에 은총에 감사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착한 모습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고 세상이 기대하는 만큼 감동을 주는 그런 공동체가, 초라한 천막을 치고 모여 있더라도 진정한 교회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사람이 많아졌어도 예배당 건물을 짓지 않고 착한 일을 했습니다. 복음을 계속 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교회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모바일'적 성격을 갖습니다. 한 곳에 정지된 교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움직였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성막을 중앙에 설치했습니다. 계속 이동했습니다. 그 성막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솔로몬이 건물로서의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상징적입니다. 그것이 성전, 교회의 성격입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무너졌고 다시 재건되었지만, 결국 또 무너진 후 다시는 건축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역사적인 섭리입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움직이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일들을 해내는 그곳이 바로 진정한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공동의 예배를 드리고 영적 훈련도 받으며, 함께 기도하고 사회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역을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지만, 그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건물에서 아름다운 섬김을 갖는 그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란 건강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도전을 따라 건강한 사역을 감당해내는 공동체입니다."
-책 <리셋>에서 가정의 초기화(리셋)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가정들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이며, 세상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힘입니다. 그 가정을 성경적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과 스토리가 가정 이야기입니다.
아담의 가정,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가정 이야기가 창세기입니다. 이후에도 성경은 다윗의 가정 이야기를 비롯해 수많은 가정 이야기를 통해 건강한 가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도전해 줍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버지여야 한다는 것을 바울 사도가 목회서신에서 잘 밝히고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통찰력입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도 건강해지고 하나님 나라도 든든히 서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란 좋은 아버지요, 좋은 남편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인정받는데 아내에게 인정 못 받고 자녀들이 존경할 수 없다면 좋은 목사일까요? 이런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주일 오후 시간은 가정에 돌려주어 온 가족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함께 기도도 하고 서로를 든든히 세워 주어야 합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예배당 밖,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존중받고 인정돼야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 '좋은 목사보다 좋은 아버지이고 싶다'는 고백도 담았습니다."
-목사님의 비전과 향후 출간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앞으로도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말씀들을 활자화하는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 그의 삶을 화폭에 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캔버스는 아니었습니다. 돈이 없어 버려진 담배갑 속 은박지를 캔버스로 삼기도 했지만, 그 속에 삶을 담았습니다. 지금은 그 그림들이 매우 비싼 값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의 신앙을 삶에 담아내고 구체화할 수 있는 말씀을 책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열심히 지금 쓰는 책이 있습니다. '몸'입니다. 이 몸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 것인가를 쏟아놓고 싶습니다.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눈, 귀, 입, 손, 그리고 발입니다. 한 음절로 된 '몸'의 각 지체들이 어떻게 사용돼야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것인지 구체적으로 쓰고 있는데, 가능하면 빨리 내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신앙은 삶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결코 삶과 괴리가 생겨선 안 됩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몸을 이루고 여러 기능을 하는 이 한 음절의 여러 몸 속 기관들을 어떻게 삶에서 가치 있게 사용하며 기능을 더 풍성하게 하여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할 것인지 다룰 것입니다. 이 작업을 할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또 이 시대에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흐름을 잡아 새로운 역사를 펼치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리셋이 정말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교회와 복음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초기화'하는 작업을 우리가 꼭 이뤄야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민도 하지 않고 여기 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 의해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편집하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현장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살아 있게 만드는 역할이 설교자가 할 일이라 확신합니다.
'리셋' 출판 이후 여기저기서 피드백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도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참 감사했고 그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담: 크리스찬북뉴스 대표 채천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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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목회자 자녀들, 뉴질랜드만 가면 ‘180도’ 변화
뉴질랜드 에든버러칼리지(이사장 이은태 목사)에서 공부했던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 체계적인 신앙훈련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면에서 신앙생활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지만 가장 많이 방황하기도 하는 ‘목회자 자녀’들이 유학생활을 ...
뉴질랜드 에든버러칼리지(이사장 이은태 목사)에서 공부했던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 체계적인 신앙훈련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면에서 신앙생활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지만 가장 많이 방황하기도 하는 ‘목회자 자녀’들이 유학생활을 통해 모두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유학을 떠날 형편이 못 되는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들은 ‘선교 장학생’으로 뉴질랜드를 찾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다듬어진다.
▲오클랜드 에든버러 칼리지 학생들.
에든버러칼리지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어주고,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목회자 자녀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가질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선교 장학생’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영어 연수 뿐만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훈련으로 방황의 시절을 거친 목회자 자녀들에게 견고하고 체험적인 신앙의 틀을 마련해 주고 있다. 현재 에든버러칼리지의 선교 장학생 프로그램의 혜택을 입는 목회자 자녀들을 매년 80명이며, 지금까지 5백여명 이상이 장학생으로 뉴질랜드를 거쳐갔다.
칼리지 관계자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다른 학교에 학비를 내어가며 3명의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들에게 장학 혜택을 주기 시작한 것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학교를 주셔서 오늘에 이르렀다”며 “사역에 매진하다 보니 자녀 교육에 소홀해져 상처와 방황의 세월을 보낸 목회자 자녀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워주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8기 학생선교사로 9개월간 뉴질랜드를 다녀온 이유진 씨(28)는 “신앙훈련에 대해 듣기만 하고 직접 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학생 선교사로 섬길 수 있어 참 귀하고 감사하다”며 “무엇보다 이은태 목사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 우선의 삶을 사시고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역지나 터전이 기도하는 대로 이뤄주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도전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소개한 에든버러칼리지 유학생활은 이렇다. 함께 유학을 떠난 기수별로 생활하는데, 오전 일찍부터 새벽기도를 하거나 가까운 기도동산에 가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식사는 함께 해 먹기도 한다. 오전 9시부터는 수업을 듣는데,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들과도 교제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이뤄진다.
이씨는 “저희도 그렇지만 타지 생활이 외롭다 보니 외국인 친구들이 마음이 많이 열리는 상황이 오는데, 선생님들이나 함께 온 장학생들 모두 하나로 연합해 친구들을 더 초청하고 복음을 전하면 잘 연결이 된다”며 “피아노나 기타를 함께 치며 찬양을 부르는 등 다른 학교들과는 좀 다른 기독교적인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은규 씨의 고백도 들어보자. “클럽도 다니고 담배 피고 술 마시는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 제대하고 유학을 떠나고 싶었지만, 경비 마련도 힘들고 부모님도 반대하셨는데 부모님이 뉴질랜드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셔서 2006년부터 1년간 에든버러칼리지에 있게 됐다. 처음에는 크리스천 학교인지도 몰랐는데 가서 교회를 다니고 셀그룹도 하고 목사님 말씀도 들었다.
타지에 있다보니 마음이 가난해져 있었고, 목사님 말씀에 울기도 하고 다함께 수요일마다 기도 언덕으로 올라가 기도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유학생 선교캠프인 코스타 집회에 가서 제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심하게 됐다.” 올해 30세인 이씨는 지금 총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이다.
김성진 씨(27·한국외대)도 목회자 자녀였지만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교회를 나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과생이다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의구심이 많았고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누나와 어머니 추천으로 2008년 8월부터 1년간 유학을 떠났다”며 “유학생활 동안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물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많이 들었고, 목사님과 전도사님, 같은 기수 친구들을 통해 삶으로 배우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살아계시면, 당신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는 김 씨는 “성경을 별로 읽어본 적도 없어 하나님은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제 신앙의 기초는 거기서 1년 동안 배웠던 게 전부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곳에서 배운 걸 토대로 계속 교제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저 같은 목회자 자녀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이상하게 목회자 자녀들 가운데 신앙생활을 못하는 친구들이 많더라”며 “캠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예전 제 모습 같아서 모두 뉴질랜드로 보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9년부터 1년 반 동안 목회자 자녀 장학생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삭 씨(27)는 “사실 믿음생활을 거의 하지 않던 상태에서 하나님 은혜로 유학을 가게 됐고, 거기서 믿음생활을 하나 하나 다 배웠다”며 “특히 외국 친구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믿음이 커지고 감동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실 친구들을 전도하기도 쉽지 않은데 외국 친구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한국인들보다 일찍 와서 기도로 준비하곤 한다”고 증언했다.
목회자 자녀는 아니지만 하선영 씨(24)도 유학생활을 통해 큰 은혜를 체험했다. 하씨는 “하나님께서 외국 유학에 대한 마음을 계속 주셨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선교에 열정이 있는 대학생들을 장학생으로 모집한다는 프로그램을 보고 지원하게 됐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하는 등 열심히 다녔지만 전도를 제대로 해본 경험은 없었는데,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일들이 생기는 등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 씨는 “섬기던 중국인 친구 2명 중 1명이 세례를 받아 너무 귀하다고 생각했던 차에 6개월 과정이 끝나 한국에 돌아가야 했는데, 나머지 1명도 세례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기도를 드렸고 6개월 더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그 친구도 지금은 세례를 받아 중국인 리더로 섬기고 있어 감사하다”며 “돌아와서도 그곳에서의 믿음을 늘 생각하며 해이해질 때마다 그때를 돌이키면서 신앙을 회복시키고 있다”고 했다.
하씨는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분들도 훌륭하셔서 테솔 과정 시험을 치면 우리 학교에서 늘 최우수 성적이 나오고, 저도 영어가 많이 늘었다”며 에든버러 칼리지가 선교와 영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임을 강조했다.
목회자 부모들도 유학 생활에 ‘만족스런 반응’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느라 자녀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부모 목회자들도 뉴질랜드 에든버러칼리지 유학을 통해 자녀들이 많은 변화를 체험하고 돌아와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유진 씨의 아버지인 이현석 목사(수원수정교회)는 “교회가 어렵다 보니 아들 녀석이 여러가지로 갈등도 많았는데 뉴질랜드에 가서 신앙훈련을 너무 잘 받아 다녀온 다음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며 “가기 전에는 신앙에 회의적인 모습이 많았는데 이제는 자기 비전도 분명히 갖고 주일 성수를 철저히 지키는 데다 영어도 굉장히 늘어 외국인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가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유학생으로 선발해 주신 학교 측에 감사드리고, 농어촌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고, 저희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은규 씨가 전하는 부모님 반응은 이렇다. “뉴질랜드에 다녀와서 제 삶이 180도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고 안정을 찾는 것보다 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이 불타올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왔다. 그래서 부모님은 생명을 얻은 것마냥 좋아하신다. 제가 돈을 많이 쓰고 돌아왔지만 너무 좋아하시고, 막내 아들이다 보니 ‘돌아온 탕자’같이 여기신다.”
이삭 씨의 아버지 이영복 목사(대구천성교회)는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후에도 삭이가 서울에 있다 보니 항상 같이 있진 않지만 방학 때나 한 번씩 만나서 보면 과거보다 신앙적으로 많이 성숙했음을 피부로 느낀다”며 “제가 목회를 좀 늦게 시작해 자녀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방황하기도 했는데 유학생활 후에는 늘 입술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고백을 하고 언제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뉴질랜드에 잘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김성진 씨도 아버지 김정식 목사(인천벧엘교회)의 ‘간증’을 보고했다. “아버지가 경상도 분이셔서 따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어머니를 통해 듣기로는 친구 목사님들을 만나면 항상 ‘우리 아들이 요즘에는 예수로 죽고 산다. 정말 예수님밖에 모른다’고 자랑하신다고 한다. 제가 전과 달리 교회 일도 많이 도와드리니 교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전에는 교회에 어른들만 계셔서 다소 침체된 면도 있었는데 저처럼 젊은 사람들이 움직이니 활동적이 됐다.”
김 씨는 뉴질랜드 에든버러칼리지에 대해 “직접 보지 못해 유학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속는 셈 치고라도 꼭 가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으니, 기도하시면서 준비해 보시라”고 권유했다.
홈페이지: www.aecn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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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사보다 담임목사가 대하기 편한 교회
본말전도는 나와 교회를 망치고 모두를 망쳐 나라까지 망친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담임목사는 역시 교회의 최고 계급인가
필자는 일전에 어느 목사님을 만나 모처럼 느슨한 마음으로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날은 신앙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가리는 일도 없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 한창 목회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니 바쁘실 테지만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 시간은 어쩐 일인지 전화도 별로 오는 일이 없어 이야기판은 활기를 띠어 갔다. 주로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고 필자는 들었다. 말씀 가운데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목사님, 제가 부목사 때인데요, 어느 여집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 놓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담임목사님보다 부목사인 제가 말하기 편했던 거였겠지요.”
목사님은 그 고민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셨으나, 필자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과는 무관하므로 생략할까 한다. 그런데 필자는 그때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가 더 대하기 편한 교회는 없는 것일까.’
독자 여러분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런 교회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본 적은 있으신가. 필자는 아직 없다.
이처럼 쓸데없는 일을 가지고 왜 이리 시간을 낭비하는 거냐고 이맛살을 찌푸릴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일이 아니다. 이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의 매우 중요한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예수께서는 왕 중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 그것도 태어날 자리가 없어 비참하도록 낮은 마구간으로 오셨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하신 뒤에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낮아짐의 본을 보이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당연히 그분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낮아져야 하는데, 그리 하고 있는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이 필자부터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목사는 누가 뭐래도 신앙상의 지도자이니 일반 성도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필자로선 누구를 탓할 계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그 같은 현실이 안타깝고 속이 상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까지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 대하기가 더 편한 교회’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자신의 둔감함이 한심스럽다.
물론 담임목사나 부목사, 전도사, 그리고 장로와 집사 같은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업무상의 포지션이라는 것은 늘 생각해 왔다. 목사는 일반 교인들보다 낮은 데까지 내려가 그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 왔다. 그리고 필자 자신도 그리되려 노력하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그리 되었느냐 하면, 아니다. 의식의 한 구석에서는 교인들보다 위에 있고자 했고, 혹 그에 부응하지 못한 교인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실은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인들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중 어느 쪽인가를 대하기가 더 편한 게 아니라 다 똑같이 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사가 일반교인들보다 더 낮아야 하는 것도,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 똑 같은 위치에 평등하게 있어야 한다. 목사는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낮아져 교인들을 섬기고, 교인들은 교역자들을 겸손함으로 섬겨 동등해져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편한 것’과 ‘가벼운 것’을 같은 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편한 것’은 계급의식을 느끼지 않고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대등하게 대할 수 있음을 말하고, ‘가벼운 것’은 상대방이 사람다움의 무게감이 없어 함부로 해도 좋을 것 같은 마음으로 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누구라도 편하게 대해 오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이 가볍게 대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말전도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만든다
한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주일을 맞았다. 그 도시에서 설교를 제일 잘한다는 목사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설교가 끝나자 그는 속으로 탄복했다. “아, 정말이지 위대한 설교자다.” 속이 다 시원해질 만큼 훌륭한 설교였던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그 다음 주일을 맞은 그는 역시 설교를 잘한다는 목사의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설교를 듣고 있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 주님, 주님은 역시 위대하십니다.” 뜨거워진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이 잘한 설교일까. 많은 사람들은 후자라고 할 것이고, 필자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자처럼 하는 설교가 잘하는 설교이고, 그렇게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위대한 설교자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야 물론 그렇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전자는 영광을 설교자가 받고 후자는 그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받고 계신데, 설교자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잘하는 설교이고, 그 같은 설교를 하는 사람이 위대한 설교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본말전도(本末顚倒)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객전도(主客顚倒)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본질이 체질화된 설교자라면 이에 충분히 신경을 쓰게 되고,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잘하는 설교와 그렇지 못한 설교를 분별하게 된다. 본말이 전도된 설교를 잘된 설교라 한다면 분별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교인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부자 되세요!’ 같은 카피와 동류의 설교를 하고,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어릿광대처럼 교인들의 폭소를 끌어내는 설교를 하려 애를 쓰는 목사와, 그런 설교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교인들을 보고 본말전도, 또는 주객전도의 실천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설교의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몰라선 안 된다.
교회 안에서가 됐건, 교회 밖 세상에서가 됐건 본말전도, 주객전도는 안 된다. 상식이 통하고 바른 것이 주도한 곳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잔가지가 본줄기를 맥도 못 쓰게 하여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객이 주인 노릇을 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 아닌가. 그로 인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데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뭉개고 있으니 본말전도도 모라라 철면피까지 되겠다는 것인가.
목사들은 교인들의 상전이 된지 오래고, 세상에서는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자르기와 깃털 뽑기에 여염이 없는데, 다 본말전도 또는 주객전도로 맥이 이어진 것들이다.
목사치고 설교를 잘하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의 사역 중에서 설교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교인들이 목사의 일상적 삶과 접하기가 쉽지 않은 도시 교회에서는 설교가 사역에서 가장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설교는 교회 성장에 가장 크게 기능하고 있다 해도 좋다. 양적 성장은 물론이고 질적 성장도 설교가 이끈다. 그러나 앞에서 든 두 예 중 전자는 양적 성장을 이룰지 모르나 교인들의 영혼은 병들게 하기도 한다.
필자도 설교 준비를 할 때면 실수함이 없이 잘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시기가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멋지고 폼 나는 설교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월이 얼마쯤 흐른 뒤 그 같은 기도와 바람 속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교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설교준비를 할 때면 기도가 “비록 실수를 한다 해도 전하는 말씀이 성도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 실낱만큼이라도 변화를 가져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설교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만 하는 설교는 설교가 아닐 수 있다. 청중들만을 향하고 자기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입으로 하며 온몸으로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온몸을 다 이용하여 제스처를 써 가며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상의 삶을 통하여 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의 삶을 통하여 불신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일꾼들이여,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지 마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서, 특히 하나님의 큰일을 하는 데에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살아 갈 때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또한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오히려 나의 능력이나 내가 쌓은 업적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가운데에서도 증명할 수 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 떨어져 서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시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생각하며 자기와는 무관한 것처럼 지나치고 말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그러고도 그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러고도 자기에게는 그 같은 모습의 그림자도 없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당시에는 바리새인만큼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이라며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의 외적인 면보다 내면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필자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는 데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한 것도,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다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당신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영광을 받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에 따라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영광으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없을 것이다. 단 그분의 뜻과 다른, 그분께서 제시하신 것이 아닌 방법으로 했을 경우를 말한 것일 뿐이다.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이나 업적이 그분의 영광을 가린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능력이나 업적은 나를 교만하게 하기 쉽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그래서 우월감이 생기면 그것이 교만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부족함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앞에서 말한 세리처럼 겸손하게 한다. 그렇다고 위축되어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겸손과 위축은 같지 않다. 겸손은 바람직한 성장을 이루나 위축은 자기비하를 가져 온다.
크리스천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일이 된다. 밥을 먹는 것도 여가를 즐기는 것도, 잠을 자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일이 된다. 잠자리에 들어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면 잠을 자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선교라든가 봉사 같은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특히 교역자들은 이점이 간과되는 일이 없는 가운데 하도록 항상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단의 일이 되고 말기 십상이다.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
본말전도는 연막을 피워 사실이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는 자신을 유리한 입장에 놓기 위해 타(他)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 많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심이 그 원인이므로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내몰고 만다.
교인들이 부교역자들보다 담임목사가 더 대하기 편한 교회, 어떤가. 무한하게 평화롭고 넉넉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늘나라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런 교회에서도 본말전도, 주객전도 같은 것들이 맥을 출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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