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1-9 손바닥 신앙과 발바닥 신앙 2001-12-10 12:25:45 어떤 성도가 신앙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하면 능치 못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을 믿고 했는데 왜 부도가 나고 망해야 하는가? 에 대한 갈등이었다. 왜 믿음을 가지고 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지 않는가? 오늘 본문은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 여호수아를 끝까지 읽어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었으며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만히 앉아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너희들에게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 세상에는 죽은 돌이나 나무를 향하여 손바닥으로 비는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손바닥으로 비는 종교가 아니라 믿음을 갖고 발바닥으로 수고의 땀을 흘리는 종교라고 볼수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다 똑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잘못된 믿음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잘못된 믿음인가 하나님의 능력만 무조건 믿고 가만히 있는 신앙입니다 내 할 일은 게을리 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 또는 앉아서 기도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무조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무절제하게 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할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믿다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신앙은 그릇된 신앙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과욕으로 욕심으로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입니다. 성도중에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성경에 한 구절만 붙잡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전체를 보고 믿음 생활을 해야지 자기에게 유리한 성경 한두 구절만을 믿는 신앙은 위험한 외다리 신앙입니다. 더구나 믿는 사람증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며 자신의 노력만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삶에 기도와 말씀의 능력을 무시하고 자신의 실력만 믿는 자신의 계획과 의도대로만 사는 잘못된 신앙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세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기는 해주시는데 세가지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첫 번 째 조건은 3절입니다. 너희가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리라 는 것입니다. 여기서 발바닥은 맨 발바닥을 의미합니다. ------ 누가 맨발바닥입니까? 바로 노예들입니다. 노예들은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철저하게 종의 모습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종의 모습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면 지켜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 출애굽기 3장에 미디안광야에서 양무리를 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호렙산으로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4절 후반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신을 벗을 때 어떻게 되어집니까? 맨발이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고 맨발 로 서라고 말씀하십니까? 약속된 땅에 들어갈 때 맨발로 밟는 땅을 다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거룩하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천국을 얻으려면 세상에서 더러워진 신발을 벗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들을 우리가 잘 압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제자들에 의해서 발을 씻김을 받아도 마땅한 분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제자들의 발들 친히 씻어줍니다. 그대 베드로가 '주여 네발을 씻길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의 발을 씻겨주지 않으면 너와 나와는 상관이 없다"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네가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너와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모든 내용들이 바로 이러한 '우리의 고집과 권리의 포기'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상의 더러운신을 신을 벗으라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기름진 땅으로 가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네가 지금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벗어서 던져야만이 들어가서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나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권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들을 주장하 면서 살아가지 말고 그 권리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되 ---------- 발바닥으로 밟는 만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1:3 절에 의하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노니 .." 라는 말씀은 그러나 우리가 발바닥으로 밟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헛됨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뒷짐지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개교회에 집회를 다니다 보면 앉아서 기도하다 보면 교회에 빈자리 채울 사람들이 오겠지하고 무조건 앉아서 성령의 놀라운 기적을 기다리는 많은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전도는 10㎞/1명. 10명의 태신자에 1명. 6개월의 사랑의 수고에 1명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고 다음에 수고의 땀을 흘린 만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나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호수아에게 왜 요단강을 건너가라고 말씀하셨을까? 무엇 때문에 이 요단을 건너가라고 재촉하시는 것일까?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을 빠져 나와서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제 4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해야 되고 그러자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시던 위대한 모세라는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동안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모세가 있었기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광야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도자인 모세가 죽었으니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과 많은 두려움에 휩쌓여 있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좌절, 혼란과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당황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이 모든 백성들아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참된 믿음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혼란과 고난과 슬퍼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원망과 두려움과 방황하는 자리에서 빛을 발휘하여 그 능력이 나타나야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열악한 환경과 열악한 조건 때문에 포기하고 망설이고 좌절 가운데 있다면 우리들의 믿음은 나에게 아무런 관계없는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픈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 번 실패한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인 반응은 기피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자신감의 결여를 통해 패배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적이고 실패의 쓴 경험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가라 그리고 네 발바닥이 밟는 곳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가만히 있으면 더욱 좌절에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 절망에 빠질수록 일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실패의 순강에 두 가지의 상반된 마음이 있습니다. --------- 첫 번째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재 있는 그대로 있고 싶어하는 사랍입니다. 만사가 귀찮고 것입니다. 현실에서 포기하고 그대로 있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보수적이게 되어서 진취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한번 실패를 하고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 됩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음식도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고, 옷도 새로운 것을 입고 싶어하지요, 여행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 가고 싶은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음으로 새로운 계기가 되고 기회만 주어 진다면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도 좋기는 하지만 앞으로 부딛쳐 올 일 들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광야에서 눌러 앉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 일어나서 요단을 건너라 '일어나라'는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냥 현재대로 머물러 있으려 하지말고 그만 머뭇거리지 말고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것은 너희가 가나안 당을 가려면 먼저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단강 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말은 세상에 살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쓸데없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정신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세상 자랑과 허영심, 세상의 욕망과 출세, 세상의 쾌락과 허망한 꿈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참되고 진실하게 크리스천에게 합당한 삶을 살려면 우리는 세상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너라는 말씀은 지리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지나날 옛사람의 잘못된 삶을 정리하고 믿는 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끝없는 걱정과 근심 속에 붙잡혀서 살아 왔지만 이제 모든 걱정과 근심을 요단강에 떨쳐버리고 건너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과중한 세상의 출생와 욕망과 허영의 짐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공연히 쓸데없는 그 힘겹고 피곤한 욕심의 삶을 끝내야 합니다. (개인 간증) 한번 실패를 통하여 절망의 끝을 가보았고 인생의 마지막 끝을 가 보았습니까? 즉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요단강을 건너는 체험을 해 보았습니까? 세상의 허영과 재물과 욕심과 출세가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돈의 노예와 같은 삶에서 이제 물질에 초연해 질 수가 있었고 인생에 참 다운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기의 순강에 신앙의 힘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던지 절실히 알게 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내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가 내 가족에게 못다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고 헛된 세상에 믿을 것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갈 때 우리가 버릴 것은 버리고 쌀 것은 싸고 새로 장만 할 것은 새로 장만하듯이 우리의 삶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요단을 건너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다음으로 두 번째 조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8절 말씀입니다.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헬라어로 성경 말씀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고스라는 말이 있고, 또 하나는 레마라는 말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성경 말씀, 66권의 말씀을 가르킵니다. 그에 반하여 레마라는 말은 이 로고스의 말씀, 66권의 성경 말씀 가운데서 특별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오늘 내가 꼭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레마의 말씀을 듣게 되면 담대해 집니다. 삶이 풍성해 집니다. ----------------- 야곱이 정들었던 집을 떠나서 먼 타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의 마음은 허허벌판과 같았습니다. 무엇을 붙들어야 될 지 몰랐고 어디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꼭 붙들 수 있는 레마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단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든지 야곱은 그때 들은 말씀을 꼭 붙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머슴 같은 삶을 살면서도 지칠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레마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 모세도 팔십 노구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을 듣고 그 백성들을 이끌고 사십 년 광야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삶의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 내가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떠나지 않고 지켜주겠다. 단 너희들이 해야할 일이 있는데 율법 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키라" 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두 번 째로 내세우신 조건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때로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당황스러운 문제를 우리가 겪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안타깝고 답답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한가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넉을 놓고 무조건 앉아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그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나 자신을 먼저 바라보고 다음에 상경을 읽어야 됩니다. --------------- 성경은 우리의 삶에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고 잘못되었으면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듯이 성경은 우리의 삶에 잘 잘못을 구부하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정말 믿음가운데 굳게 서 있는가, 내 삶이 정말 하나님 우선주의 인가 성경을 익으면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실까 안도와 주실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과연 하나님 중심에 서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세우신 이 조건에 내가 합당하게 살아 왔는가? 하나님 만족하실만한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성공철학에 공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식에 의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믿고 우리가 다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에게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천국의 시민권자요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지옥에 들어가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여러 가지 사탄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가롯유다는 은30냥이라는 재물에 유혹되어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먹고 저주받는 결과를 받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물을 탐내다가 그 자리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약점들을 잘알고 있어서 그 약점을 통하여 유혹합니다. 1)재물에 약하면 재물로 유혹하여 넘어지게하고, 2)권세나 명예를 좋아하면 그것을 통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가는 데 있어서 최대의 걸림돌과 적은 바로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는 결단코 안됩니다. 2)사탄은 여러 가지 환란과 핍박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무서운 것은 핍박이 아니라 수고가 없이 편하고 쉽게 단번에 얻으려는 욕심과 세상의 유혹이 다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앞에 두고 여호수아에게 네가 발바닥으로 밟은 만큼 주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걱정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부닫칠 싸움들을 생각한다면 정말로 밀려오는 두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나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만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시고 아주 구체적으로 5절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너희들 모세를 알지 않느냐 내가 모세에게 했던 것처럼 너희들에게도 똑같이 하겠다. 내가 너희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쯤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그만 걱정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흉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때때로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근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지 내 믿음이 바로 요것뿐인가? 라고 염려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 오늘 본문말씀, 여호수아서 1장 1절에서 9절 말씀은 짧은 말씀입니다만 강한 메시지가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담대하라'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말이 세번씩이나 반복해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6절을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그랬습니다. 다음 7절에 절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이 말을 되풀이합니다. 이 말씀만으로도 부족하여 이제는 말씀을 하나 더 붙였습니다. 9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3번씩이나 강조해서 같은 뜻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걱정을 하며 벌벌 떨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떨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마음을 담대하게 가져라는 온갖 말씀으로 거듭거듭 연거푸 말씀하셨을까 성경 어디를 찾아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 말씀을 가지고 세 번씩이나 강조하셔서 말씀하신 것을 찾기가 아주 힘듭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우리들도 별반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하나님은 나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다 잘 압니다. 또 우리가 그걸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조그마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모든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또 염려합니다. 불안해합니다. 걱정과 근심 때문에 밤잠을 못 잡니다. 도대체 우리의 믿음은 어느때 사용할 것인가? 에스더서에 의하면 모르드개가 조카 에스더를 양녀로 삼아 신앙 가운데 왕비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전멸당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내거 너를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키운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라는 외침에 그녀가 생명을 내 놓고 믿음으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것 처럼 우리들의 믿음 역시 고난과 위기를 맞이 했을 때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우기의 때에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야 하지 않은가 --------------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빈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주영회장이 인천 부두 하역장에서 일할 때 밤마다 잠을 자려면 빈대에게 물려서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그래서 고민 고민 하다가 머리를 써서 큰 상을 펴놓고 상 다리 밑에 물그릇을 놓아 빈대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해 놓고 잠을 자는데 일단은 성공했다. 그러나 몇 시간 자다 보니 빈대가 극성스럽게 물길레 불을 키고 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서 천장에서 떨어져서 접근을 했다. 이 빈대를 보면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힘들고 불가능해 보일 때마다 이 빈대를 생각하면서 극복을 했다고 한다. 실패한 경험으로 인해 포기하고 있는가? 믿음은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한번 요단을 건너는 것이다. 그리할 때 가나안을 밟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복을 받는다. 맺는 말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그 이유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기도만 하고 있다든지, 믿음으로 한면서 자기 생각대로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발바닥 신앙을 갖고 요단강을 건너는 체험을 통하여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고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발바닥 신앙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능력을 믿고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발을 옮기지 않으면 가나안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지만 우리가 해야 될 부분들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