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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와 "열려라, 참깨"
2002-06-07 19:15:48   read : 18387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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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29: 17 ~ 21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그 기름진 밭이 다시 밀림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둡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앞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모두 끝장 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몰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외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3: 1 ~ 10

오후 세 시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그 앉은뱅이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나서, 그에게 "우리를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그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하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가 걸어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고서 모두 그에게 일어난 일로 크게 놀랐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복음서의 말씀: 마가복음 7: 31 ~ 37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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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서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귀먹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 이야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귀먹고 벙어리 된 사람을 예수에게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손가락을 귓속에 집어넣어서 귀를 뚫리게 하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혀를 만졌더니 입이 열렸습니다. 이 광경은 갈릴리 바닷가 남쪽에서 벌어진 예수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먹었던 귀가 뚫리고, 막혔던 말문이 열린 그 사람은 물론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찬양하였습니다. 세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신 일, 모두 훌륭합니다." 두 번째는 이유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시고." 세 번째도 이유입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셨습니다."
세 문장으로 된 이 반응을, 성서학자들은 엄청난 찬양, 송영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을 접한 모든 신도들의 감격과 찬양이 그 속에 함축적으로 다 들어 있습니다. 그가 하신 일 모두 훌륭합니다. 귀먹은 사람이 귀가 열렸습니다. 벙어리가 입이 열렸습니다. 더 무엇으로 찬양하렵니까? 이게 찬양입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성가대 찬양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조셉 하이든이 "천지창조"라는 오라토리오를 작곡했습니다. 우리는 그 곡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곡만 아니라 가사를 통하여 감동을 받습니다. "주께서 하신 일 모두가 훌륭합니다." 이것이 가사의 첫 구절입니다. 이 첫 구절은 창세기 1장 31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 째 되는 날 쉬셨다고 했는데, 쉬기 전에 엿새 동안 창조한 모든 것을 다 둘러보시고서 하나님께서 하신 기쁨의 찬가입니다. "참 좋다." 그 말씀은 히브리말로는 "샬롬."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이 참 좋다."
예수 주변에 모였던 갈릴리 사람들은 이 창세기의 엄청난 창조신앙을 압축한 구절로 찬양합니다. "그가 하신 일, 예수께서 하신 일, 모두 훌륭합니다. 참 좋습니다." 그 뜻입니다. 당시에 이 사람들이 히브리어로 말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로 말했다고 하면 "예수가 하신 일 참 좋습니다. 샬롬" 했을 것입니다.
그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설명은 "듣지 못하는 사람 듣게 하시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말하게 하십니다."입니다. 헨델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감격하여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을 하나하나 뽑아서 "메시아"라고 하는 거대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본문에 있는 "귀머거리가 귀가 열렸습니다. 벙어리가 입이 뚫렸습니다."라는 이 말은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32장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 말은, 하나님이 구원의 주로서 우리 가운데 오시면, 눈 먼 사람은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은 귀가 열린다. 그때가 되면 말을 못하는 혀가 노래 할 겁니다. 광야에서는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를 것입니다." 이 이상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읽은 마가복음 말씀은 창세기의 찬양, "그가 하신 일 모두 훌륭합니다."와 이사야서의 찬양, "듣지 못하는 이 듣게 하시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말하게 하십니다."를 하나로 합한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오라토리오와, 「메시아」의 오라토리오를 합치면, 우리는 또 한 편의 찬송를 작곡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이,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마음 속 깊은 데서부터 찬양하는 그런 찬양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께서 행하신 그 기적의 한가운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손가락을 넣어서 귀가 먹은 사람의 귀를 뚫으시고." 왜 손가락입니까? 누가복음 11장 2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믿어라." 귀신을 내쫓는 기적의 사건은 하나님나라 사건이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 하나의 사건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은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의 상징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라는 이 말은 주석에 보면, "성령의 손가락으로"라는 말로 바꿔 써도 됩니다. 이 말대로 하면 예수께서 성령의 손가락으로 막힌 귀를 뚫었다는 말입니다. 벙어리 된 것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께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혀에 발랐더니 말문이 열렸습니다. 침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의 공로로 막힌 말문이 열리게 하셨더니, 막힌 말문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습니다.
뭐라고 찬양했습니까? "당신이 하신 일 모두 훌륭합니다. 그걸로 난 족합니다. 내 입이 열렸습니다. 내 귀가 뚫렸습니다. 성령의 손가락으로 내 귀가 뚫렸습니다. 하늘 음성이 들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외침도 들립니다. 내 입이 열려졌으니, 내 귀로 들은 하늘의 말씀을 내 입으로 전합니다."
귀가 뚫린 사건, 입이 열린 사건, 이것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귀가 먹었다는 건 아무 소리도 못 듣는다는 뜻이 아니고, 자기 소리만 듣는다는 뜻입니다. 이게 심리학적인 의미의 귀머거리입니다. 벙어리가 뭐냐 하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말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평소에 듣고 싶었던 이야기만 듣습니다. 그리고서는 입으로 그 얘기만 합니다. 자기 얘기만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현대판 벙어리요, 귀머거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속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애들 읽는 동화에서처럼 "참깨야, 열려라," 이상한 문 만들어 놓고 "기적의 문아 열려라. 나 나간다." 해도, 그것은 자기 안입니다. 아무리 기적의 문을 열어본다고 한들, 그 문은 내가 만든 문입니다. 내가 재단하고 제작한 기계입니다. "기계야 열려라. 내가 그 속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기계는 컴퓨터가 됐든, 방송이 됐든, 자기가 조종합니다.
예수께서 귀머거리, 벙어리를 고치셨는데, 심리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귀머거리는 나아야 합니다. 벙어리가 나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귀가 뚫리면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입이 열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여기에 오늘 텍스트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중국 용정에 가서 우리 교회의 봉사단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용정봉사단"이 치료를 하는데 저는 치료하는 광경을 보면서, 또 옆에서 도우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치료하시는 분들은 성심 성의껏 치료하고, 치료받으러 오는 분들의 얼굴은 감사로 넘쳤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마치고 나갈 때 두툼한 약봉지 하나씩을 들고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한 할머니한테 물었습니다.
"다 나았습니까?"
"다 나은 것 같아요."
"그 약봉지 뭡니까?"
두툼한 약봉지를 좋아서 들고 가시더라구요.
"어디 아프셨습니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아팠는데요, 이게 다 나은 것 같아요."
그 할머니 얼굴이 얼마나 환한지! 그건 무얼 말합니까? "아, 나를 치료한 의사 양반들, 간호사 양반들, 경동교회분들 믿을 만하다. 이분들이 만지니 쑥 낫는 것 같다. 거기다가, 내일 또 아플지 모르니 약봉지를 들고 가라고 한다. 이제 다 나았다" 그런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약봉지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환자는 의사에 대한 믿음을 들고, 믿음의 약봉지를 들고 가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화사한 웃음이 가득합니다. 2천 년 전 갈릴리 바닷가에서만 아니라, 용정에서도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서, 용정사람들이 소 한 마리 잡았습니다. 너무 좋으니 소 한 마리 잡을 수 있지요. 감사하지요.
우리 경동교회가 용정에 오래 전에 건물 하나를 지어서, 양로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근데 이 건물은 현재 논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토의한 끝에, 양로원 운영을 그만 두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금년 초부터 양로원 사업을 중단하고,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건물은 올해부터는 당분간, 관리권을 중국정부에 이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강 목사님이 태어나신 용강 촌의 촌에 이양하기를 권했습니다. 그래서 용강촌에 관리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용강 촌은 그 건물을 관리하되, 마을회관으로 쓰기로 하고, 현재 있는 "경노원"의 노인분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다른 양로원에 합해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이 건물이 교회가 될 수도 있고, 복지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용정 시 전체를 대상으로 어린이들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금년에 1학기 때, 2학기 때 각각 22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 동안 중국 사람들 말이, 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조선족만 도와주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조선족 절반, 한족 절반으로 딱 반씩 나눠서, 교육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서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중국사람들 요즘 평균임금이 괜찮게 받는다 그러면 월 500원입니다. 우리 돈으로는 한 8만원 됩니다. 이게 월급인데 소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400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가 600원입니다. 고등학교가 800원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하면서, 의무교육도 없이, 이렇게 학비가 비싸면 누가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현실이 그런데 어떡하느냐고 대답합니다.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22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400원, 600원, 800원씩.
아까는 할머니 얘기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어린이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스물 두 명을 모아 가지고,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경동교회 이름으로 주었습니다. 교회라는 말을 안 쓰는 것이 좋다고 하여 "경동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 한 보따리, 장학증서, 장학금 돈이 든 봉투, 어린이들로서는 생전 처음 만져보는 돈일 것입니다만, 이걸 들고 밖에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데, 저는 아직 그렇게 밝은 어린이 얼굴을 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이 어린이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용정 경험을 통해서 우리와 중국 사람 사이에 이런 작은 봉사를 통해서 중국 사람들의 귀가 뚫린 것을 봤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말문이 열려서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쏟아놓는 것도 들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귀가 막히고, 말문이 막힌 사람을 불러다 놓고, 성령의 손가락으로 귀를 찔러서, 자기 소리만 듣던 그에게 하늘의 음성도 듣게 했습니다. 자기 고정관념에 둘러싸여서 자기 소리만 듣던 사람에게 민심의 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천심의 소리도 듣게 했습니다. 이웃의 외침도 듣게 했습니다. 이 사람의 귀가 뚫린 것입니다. 그의 얼굴이 너무 밝습니다.
귀가 뚫려 민심의 소리를 들은 사람은 입이 열려 민심에 대한 사랑의 소리를 냅니다. 하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하늘의 음성을 따라 말합니다. 도탄에 빠진 사람의 탄성을 들은 사람은 그 들은 소리 때문에 입으로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현대판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 나라가 바로 귀머거리와 벙어리의 집합소 같습니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 그렇게 많은 소리가 오가는데, 서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남과 북도 각자 이야기들을 하는데, 자기 소리만 듣는 것 같습니다. 자기 소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익집단과 이익집단이 서로 마주보고 말을 하는데, 전부 자기 소리만 듣고, 자기 소리만 뇌까리니, 소위 커뮤니케이션 부재입니다.
귀는 있는데, 자기 소리만 들으니 귀머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입이 있어서 말을 하는데, 자기 소리만 내뿜으니 말이 상통하지 않습니다. 벙어리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커뮤니케이션은 성령의 손가락에 와서 뚫어야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침을 발라야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든, 여러분 나름대로의 체제나 제도나 사고방식이나 고정관념이나 이익이나, 그 모든 것을 신격화해가지고, 거기다가 "참깨야 열려라" 한들 열리지 않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라고 하셨습니다. 원래 발음은 "에파타"에 가깝습니다만 우리말 성서는 에바다로 표기했습니다. 어떻게 발음해도 좋습니다. "에파타, 하늘이여 열려서 막힌 귓속으로, 굳은 혀 속으로, 딱딱한 가슴속 깊은 데로 들어오십시오. 이 사람들은 제 소리만 듣습니다. 뚫어서 하늘 소리 듣게 하십시오. 제 소리만 말합니다. 하늘의 음성을 말하게 하십시오."
"에·파·타!" 외치면 사람이 변합니다. 에파타는 우리가 만든 장치가 아니고, 변화시키는 하늘의 소리입니다. 당시 갈릴리에 살던 사람이나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은 공적으로는 전부 헬라어를 썼습니다. 공용어는 헬라어입니다. 이 "에파타"라는 말은 갈릴리 지방에 살던 일부 사람들이 가정에서만 쓰던, 소위 속어에 해당하는 '아람어'올시다. 예수께서는 헬라어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일부만 알아듣는 아람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파타. 오늘 우리도 사회 속에, 우리 가슴속에, 우리의 입 속에 하늘이 열려 임하시게, "sesame, open sesame!" 하지 말고, 한번 "에·파·타!" 해보십시다. "하늘이여 오소서. 나를 변하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게 하옵소서. 내가 말하면 다른 사람이 깨닫게 하옵소서. 하늘이 열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서에서 죄란 무엇입니까? 귀를 막고 하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들은 대로 입으로 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따로 잘못을 범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말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귀 뚫으시고, 입 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말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뚫린 귀로 들은 이야기, 그것은 반드시 열린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침묵은 반드시 금이 아닙니다. 말할 때는 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침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음성을 들으면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성서는,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돌들로 소리치게 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성령의 손가락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듣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침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하십니다.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리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 천 년 전의 그 찬송이 울려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하신 일 참 훌륭합니다. 저도 행복합니다. 제 가정도 진실로 행복합니다. 우리 나라, 우리 사회도 진실로 행복합니다." 이런 찬양 왜 못하고, 이런 사회 왜 못 만듭니까? 에파타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한번 에파타를 갈구해 보십시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학자 중에 마틴 부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진정한 관계,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화하는 둘 사이에 "나"와 "당신"이라는 인격적 관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I" 와 "Thou" 관계가 단절되게 되면, 그 관계는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고, 나와 물건인 그것, I와 It의 관계가 됩니다. 간단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에서, I와 It가 되면, 소통은 끝납니다. 다 자기 소리만 듣고 제 말만 하게 됩니다.
성령의 손가락의 중재를 통해서 서로 들어야 합니다. 서로 들은 소리를 함께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늘의 음성을 담아낸 것, 그것이 설교든 기도든 찬양이든, 발로 뛰고 손으로 쌓은 봉사든, 그것이 바로 에파타 아닙니까? 이 에파타가 오늘 여러분의 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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